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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抗命)- 심종철(경남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

  • 기사입력 : 2019-09-10 20: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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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국토가 전란에 휩싸인 1593년 2월, 한강변의 조선군 진영에 상관의 명령을 어긴 장수가 있었다. 권율 장군 휘하의 조경(趙儆)장군이다. 임진왜란으로 선조는 의주까지 몽진하고 수군의 분전과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전쟁의 양상이 치열하게 전개될 즈음, 명나라 이여송의 군대가 한양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접한 권율 장군은 한양 수복 전에 참전하기 위해 북진 중이었다. 행군 중 행주산성에 잠시 머물 때의 이야기다.

    음력 2월의 행주나루는 겨울 강바람이 유독 매서운 곳이다. 잠시 머물 예정인 행주성에 이르러 권율 장군은 긴 행군으로 지친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했다. 하지만 휘하의 조경장군은 군대는 하루를 머물러도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며 권율 장군의 지시에 반기를 들었다. 진지 공사는 권율 장군의 외출시에 무단으로 진행됐다. 언 땅을 파서 진지를 구축하느라 병사들의 불만은 가득했을 것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진지공사가 끝난 직후인 2월12일, 한양에 집결해 있던 왜군 3만명이 급습해 왔다. 당시 왜군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한 최정예군이었다. 믿고 있던 명군마저 벽제관전투에서 패퇴한 상황에서 조선군은 고립무원의 상태로 무려 9차례의 혈투를 벌인 끝에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행주대첩이다.

    이 공으로 조경장군은 선무3등공신에 봉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 권율 장군의 처신이다. 전시에 부하의 항명까지도 끌어안은 권율 장군의 포용력이 없었다면 조경 장군은 일개 항명한 장수로 이름도 없이 스러졌거나 행주성 전투 또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근자에 항명이라는 기사가 자주 회자되곤 한다. 항명은 조직 모멘텀에 대한 개별 소신의 반작용이다. 권율 장군은 부하 장수의 항명이라는 반작용을 보듬어 승리의 결정적 요소로 활용했다. 물론 항명은 정당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에 근거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선택은 조직과 상사의 몫이다. 현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낼지 우리 사회의 성숙함의 수준이 자못 궁금하다.

    심종철(경남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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