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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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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4-어제, 오늘 그리고 청춘] 마산성신대제보존회 노영수 씨

어울림에 이끌려 어우러지다

  • 기사입력 : 2019-08-27 21:05:02
  •   
  • #1 성신고천문

    자미대제가 별을 다스리시고, 태을신이 십이궁 안에 계시네.

    복두칠성님이 이곳에 임하시면 성주가 되고, 삼태성이 함께 비추면 어진 신하되네.

    창원시민대표가 간절히 청하건대, 성스러운 자미대제와 이가 다스리는 별이 하늘로부터 지상에 강림하소서.

    #2 현재 제당에서 사용하는 축문

    歲次○○年三月○○朔二十八日○○

    창원주민대표 ○○○ 성숙대장님께 감히 살피고 고합니다.

    고대부터 바다의 뱃길을 평안히 열어주시니

    우리 선조들의 삶이 풍요로워졌고,

    오랫동안 우리 창원 시민들에게 복을 내리시니

    만인의 입에 머무릅니다.

    조선시대에 지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일대에는 창원을 포함해 김해·웅천·칠원·함안·의령·진해·고성·거제 등 주변 고을의 세곡(稅穀) 수납을 담당한 조창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세곡은 조운선을 통해 한양으로 옮겨졌다. 조운선의 운항과 항해의 안전은 지역주민들의 삶에 필수조건이었고, 뱃길의 안전이 중요한 과제였다. 마산성신대제(馬山星神大祭)는 마산포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성신신앙으로 조창이 생기면서 관민이 합세한 대규모 행사로 발전하게 됐다.

    마산성신대제는 지난 2016년 5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됐다. 성신대제는 250년 전통의 지역 축제이자 바다를 접하고 있는 마산 조창을 배경으로 한 문화적 특성들을 담고 있는 중요한 전통 문화유산이다. 오광대공연이나 씨름, 줄다리기 등의 민속놀이는 제의 행사와 별신굿이 끝나면 한바탕 놀이마당에서 즐기는 행사다. 또한 어시장 축제의 원형이며 수협 공판장의 초매식 등에서 성신대제를 중요한 요소로 구성하고 있다. 이를 보존·계승하고 있는 마산성신대제보존회는 마산문화원에서 학술 연구로 고증하고 전문적인 연희단을 양성해 부설단체로 있다가 독립했다. 현재는 보존회를 통해 공연으로 시민들에게 이를 되돌림으로써 창원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었다. 잊혀 가는 민속행사가 지금껏 이어져 오기까지는 마산문화원과 보존회의 노력이 컸다.

    안전한 세곡 운반과 풍어를 기원하는 온 지역민들의 염원이 낳은 이 전통 문화유산이자 지역 축제가 경남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까지 청춘을 바친 젊은이가 있다. 지난 23일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위치한 마산성신대제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난 노영수(39)씨다.


    마산성신대제보존회 노영수씨가 오광대의 할미 놀음을 선보이고 있다. /김승권 기자/

    ◇ 시작은 할아버지부터

    “어렸을 때부터 농악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 해운대에서 자란 노씨는 할아버지와 5살 때까지 함께 살았다. 농악을 했던 노씨의 할아버지는 어린 그의 머리에 상모를 씌워놓고 돌려보라고 하곤 했다. 자그마한 손자가 큰 상모를 머리에 쓰고 돌리려고 애쓰는 귀여운 재간을 대청마루에 앉아 흐뭇하게 지켜보던 할아버지. 그 모습을 노씨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는 “(상모를 돌릴 때면) 할아버지가 ‘잘한다. 잘한다’라고 하시면서 미소를 짓곤 하셨는데, 애가 돌리는데 상모가 돌아가겠습니까”라고 웃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일까. 조부가 돌아가시고, 9남매였던 노씨 아버지의 형제·자매들은 ‘구남매 풍물단’을 조직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사촌 동생은 탈춤을 추는데 그 동생과, 상쇠(사물놀이에서 꽹과리를 치는 사람)를 하는 삼촌이 계셨어요”라며 “전공자들이 있으니까 삼촌들이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해서 구남매 풍물단을 만들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삥(?)을 많이 뜯었죠”라고 추억담을 전했다.


    마산성신대제보존회 노영수씨. /김승권 기자/

    ◇ 어울림을 잊지 못하던 청년, 성신대제에 발 들이다

    부산의 한 전문대학 레저관광학과에 입학한 노씨는 그곳에서도 탈춤동아리에 가입했다. 20대 초·중반을 이 동아리에서 다 보냈다는 노씨에게 그곳의 추억은 마산성신대제로 발을 들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대학 동아리에서 탈놀이를 배웠는데 너무 값진 경험들이었어요. 통영에서 여러 대학의 동아리 학생들이 한곳에 모여 춤 추고, 밥 먹고, 잠 자고, 다시 춤추며 부대끼면서 사람들을 만나가는 게 좋았어요.”

    단체공연에서는 구성원들의 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개개의 동료들에 대해 더 잘 알 수밖에 없고, 그간 같은 고생을 하며 동고동락했던 그 시절을 노씨는 잊지 못한다. 물론 그 안에서도 각자 더 잘하려는 경쟁심이 있었지만 더 나은 춤사위와 목소리, 그리고 공연을 하고자 하는 목표는 모두 같았다. 노씨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라며 “동질감이 있었어요.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어처구니’에 들어올 때도 그런 인연들의 역할이 컸어요”라고 말했다.

    마산성신대제보존회 노영수씨.
    마산성신대제보존회 노영수씨.

    노씨는 오광대 탈놀이, 마당극, 연극무대에 대한 갈증이 컸지만, 생계를 이어야 했기에 30살이 되기 전까지 이상과 현실을 오갔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가업인 꼼장어집을 하던 중 창원에서 활동하는 마당극 단체 ‘어처구니’ 관계자의 제의를 받고 정든 고향을 떠나 창원으로 오게 됐다. 그는 “어처구니 식구들이 식당에 여러 번 놀러 왔었는데, 오면 ‘니가 판에 없으니까 판이 안 산다’, ‘같이 한번 해볼래?’라고 나를 유혹했죠”라며 “고민은 길지 않았어요.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하셨으니까. 설거지를 하면서 이어폰을 끼고 판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판에 끼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고, 어머니가 그 모습을 몇 차례 봐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노씨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까지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전통 놀이판의 어울림을 잊지 못해 다시 발을 들이게 됐다. 그리고 지금의 마산성신대제보존회의 주요 회원들이 된 어처구니 멤버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마산성신대제가 경남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다고 설명했다.


    ◇온 지역민이 어울리는 축제의 장을 꿈꾼다

    노씨는 마산성신대제를 이렇게 표현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축제의 장.

    노씨는 이러한 마산성신대제가 바다와 인접한 이곳에서 온 지역민이 어울리고 참여하는 지역의 축제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꿈이다. 그는 “유수의 축제들이 많지만, 지역민들이 다 달려들어서 하는 것이 없어요. 도시 전체가 잔치인 느낌이 안 든다는 거죠”라며 “성신대제가 어느 정도 시민들에게 다가가 창원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축제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굿이라고 하면 무당굿을 떠올리기 쉬워요. 하지만 그건 한 종류에 불과합니다. 저는 얽히고설킨 갈등을 풀어나가는 모든 행위를 굿이라고 봅니다”라면서“성신대제에서 말하는 신은 별의별 신을 다 말하는 거예요. 민이고 관이고 모두가 한양으로 이어지는 뱃길이 순조롭게 풀리길 기원하는 것이죠. 우리 지역민이 모두 참여해 즐겁고 흥겹게 각자의 염원을 풀어내는 장이 마련됐으면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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