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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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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회색 티셔츠와 돈오점수- 이태희(양산경찰서 수사과 경위)

  • 기사입력 : 2019-08-27 20: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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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년째 사용하고 있지만 여태 몰랐다. 경찰이면, 수사관이면 당연한 듯 으레 있는 줄 알았다. 오남용에 따른 처벌이나 불이익에만 기민하게 반응했지 신성함과 소중함, 중압감 따윈 관심이 덜 했던 게 사실이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역량이 부족하므로 지휘가 존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 3년 동안 경찰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연간 56만명의 피의자 중 99.5%에 해당하는 피의자가 검찰에서도 같은 불기소 의견으로 처분받았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막기 위해 지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나라는 선진국가의 보편적인 형사 절차를 따르며 시스템적으로 권한의 집중을 견제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동료들은 증거를 분석하고, 피의자를 신문하고 관련 판례를 검색한다. 목표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마크 저커버그의 회색 티셔츠를 한 번쯤 곱씹어봤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실체적 진실 발견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그 외에는 최소한의 의사결정만 하고 싶다. 늦었지만 수사권의 신성함과 무게감을 돈오(頓悟)처럼 깨달은 어리석은 수사관이 점수(漸修)하는 심정이렷다.

    이태희(양산경찰서 수사과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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