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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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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 기사입력 : 2019-08-27 20: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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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도는 씁쓸한 우스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학생과 선생님의 대화다.

    학생: 제가 꿈이 있는데요.

    선생님: 그래 네 꿈이 뭐냐?

    학생: 제 꿈은 재벌 2세이거든요.

    선생님: 그런데?

    학생: 아빠가 노력을 안 해요….

    웃고 넘기면 그만인 얘기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부모 잘 만나면 특별나게 사는 요즘 시대를 풍자한 개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은 만날 때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노력만이 살길이라는 문구를 책상에 붙이고 공부해 판·검사와 장군이 된 주변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안락하고 윤택하게 살아보라는 덕담인 셈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아는 성공한 사람들은 이후에도 그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는 소리가 들렸고, 그 자식의 자식들까지 유학을 갔다거나 유명대학에 입학했다는 소릴 들었다. 뭔가 모르게 짜증이 났지만 그게 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만 탓을 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정유라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 사회는 보일 듯 보이지 않던 특별한 그들만의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됐다. 부와 지위도 세습되지만 가난도 대물림받을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계급사회가 일부 드러난 것이다.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富)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며 자조적인 표현으로 흙수저와 금수저로 대변하는 ‘수저계급론’까지 탄생시켰다. 청년들은 공정사회를 원하는 기대치를 촛불시위로 확산시켰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정사회를 약속했다.

    이런 가운데 불거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에 대한 각종 입시 관련 의혹은 또다시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구조와 겹겹이 얽혀진 그들만의 세상이 견고하게 쳐져 있음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의 딸이 고교 때부터 대학에 가서 인턴십을 하며, 논문까지 작성해 입시 스펙을 쌓았다는 얘기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놀라운 방식이다. 조 후보가 직접 그 과정에 개입했는지는 청문회에서 소상하게 밝혀지겠지만 졸지에 그는 기득권의 상징이 됐고, 많은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경제력도 정보력도 없는 무능한 부모로 전락했다. 조 후보는 단지 여느 부모처럼 자식이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교육을 시켰을 것이지만, 딸이 걸어온 길은 딸만의 노력으로는 이뤄질 수도 없고, 일반 학생들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올 초 보건사회연구원이 청년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의 계층 상승 가능성을 생각할 때 아버지의 직업과 어머니의 학력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부모가 물려주는 부(富)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에 대해 희망을 품는 청년도 크게 줄어 2013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응한 30세 미만 청년 가운데 자신의 계층이동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 청년은 53%였지만, 2017년 조사에서는 38%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청년의 계층인식에서 ‘수저계급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세상은 공평하지는 않다.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고, 먼저 태어났다고 먼저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억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자신의 꿈을 펼치는 청년들이 많아진다.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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