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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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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중국 상하이

자연 품은 낮, 역사 깃든 밤

  • 기사입력 : 2019-07-31 21: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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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올해만큼 한국 근대사에 대한 재해석의 논의가 뜨겁게 전개된 적이 있었던가? 우리 현대사의 출발은 자연스럽게 상하이 임시정부의 출범을 기점으로 정하게 된다. 그 시기 중국의 입장에서도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상하이이기에 과거와 현재가 어색하지 않게 공존하는 인구 2400만의 이 거대도시는 국제도시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아침식사= 둘째 날 아침,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해외 숙소를 예약할 때 웬만하면 조식은 포함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도시라도 아침식사는 주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만의 음식문화가 가장 진솔하게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은 아침을 밖에서 사먹는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선택권이 다양하다. 내 선택은 따뜻한 중국식 두유 또우지앙과 추러스처럼 길쭉한 여우티아오. 갓 튀겨낸 여우티아오를 또우지앙에 찍어먹으면 되는데, 바삭하고 고소한 매력에 푹 빠져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나는 여우티아오와 또우지앙을 먹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첫 번째 목적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에 가고자 지하철을 탔다. 신천지역 6번 출구로 나와 한적한 가로수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한글로 쓰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현판이 나왔다. 안내판을 따라 골목으로 꺾으니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현지 주민들이 지금도 실제 살고 있는 가정집 사이에 임시정부 입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건물이라 하면 으레 웅장하고 권위적인 건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임시정부의 외관은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허름함 앞에서 오히려 나는 더 숙연해졌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정부청사 입구로 들어가는 골목길. 일반 주택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정부청사 입구로 들어가는 골목길. 일반 주택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곳 - 티엔즈팡=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주변 낡고 허름한 건물들 사이사이 좁은 골목에서 80여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중국의 전통의상과 공예품들을 판매하는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을 연상케 하는 거리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사람의 숨결과 정이 어우러진다. 2001년 지역정부와 주민들이 뜻을 모아 전통이 숨 쉬는 매력적인 공간을 연출하고자 노력한 결과 문화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거리가 됐다.

    상점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공예품들.
    상점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공예품들.
    티엔즈팡 예술의 거리의 찻집에서 발견한 손님 방명록.
    티엔즈팡 예술의 거리의 찻집에서 발견한 손님 방명록.

    즐비한 상점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제각각의 개성을 연출하고 있으면서도 묘한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공방마다의 공예품들은 개성미를 발휘하고 은은한 차향은 오감을 자극하며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차 한 잔을 대접받은 훈훈한 기억은 두 번째 상하이 방문 때에도 나를 이곳으로 소환했다.

    ◆낮의 예원, 밤의 와이탄= 상하이에서 가장 빛나는 두 곳을 고르라면 예원과 동방명주를 꼽겠다. 중국 전통 남방식 정원인 예원(豫園)은 명나라 때의 고관이었던 반윤단이 아버지를 위해서 20년 동안 조성한 공원이다. 지난 400년간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훼손과 복원을 반복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기 때문에 정원 특유의 고즈넉함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꽃과 나무, 건물과 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눈이 즐겁고 곳곳이 포토존이다. 예원 내부를 걷다보면 담장이 물결 무늬로 되어 있어 독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담장 위로 길게 올려놓았다. 아마도 가문의 영광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중국 전통 남방식 정원 '예원'
    중국 전통 남방식 정원 '예원'
    중국 전통 남방식 정원 '예원'
    중국 전통 남방식 정원 '예원'

    상하이에 어둠이 짙게 깔리면 와이탄이 반짝반짝하고 빛난다. 상하이 현대사의 상징적 장소와도 같은 와이탄 강변산책로에는 유럽풍의 은행, 호텔, 공공기관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서 이국적이고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금은 이 건물들이 낮보다 더 아름다운 상하이의 밤을 만드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후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상하이 지역을 조차하면서 지은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지금의 와이탄은 상하이의 그 어느 곳보다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관광명소라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상하이 현대사의 상징적 장소인 와이탄 강변산책로의 유럽풍 건물
    상하이 현대사의 상징적 장소인 와이탄 강변산책로의 유럽풍 건물

    ◆잿빛 공장의 이유있는 변신 - 모간산루 M50= 모간산루 M50 지역은 현대 중국예술의 기류를 타고 창작의 공간지대로 부상하는 곳이다. 1930년대 사업화의 열풍을 타고 황푸강 남쪽에 조성된 방직공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산업유산이다. 1990년대 산업구조가 전환되고 도심지역의 공업시설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쑤저우허 연안 공업지역은 쇠퇴기를 맞이한다. 덩달아 사람들도 이곳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춘밍 방직공장의 주변 입지 여건을 읽어낸 안목은 공장 북쪽에 자리한 역사에서 내리는 승객들의 시선이 처음 머무는 우뚝 선 굴뚝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쇠망한 공업지역의 역사적 보존을 위한 의지에 심미적 가치를 연결하고 창작이라는 예술적 부가가치를 가미하여 이곳을 상하이 예술문화의 랜드마크로 재탄생시켰다. 매년 300회 이상의 전시를 유치하고 20여 개국의 예술가들이 개인 아틀리에, 화랑, 예술교육 공간, 디자인 창의기업 사무실을 열었다. 이곳은 이제 아시아 예술시장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랑인 학고재와 샘터화랑도 몇 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상하이 여행을 돌이켜보면서 아픔의 역사라도, 부끄러운 과거라도 구태여 ‘아픔’, ‘부끄러움’의 단어 안에 가둬 안타까워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의지와 정성이 더해지면 새로운 수식어가 따라붙게 되고 과거의 흔적 위해 덧칠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하면 죽어가는 폐허의 공간도 역동성 넘치는 예술의 터전이 된다. 소중하지 않은 과거는 없음을 새삼 느낀다.

    메인이미지

    △손수나

    △1988년 부산 출생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치학 전공

    △경남메세나협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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