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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내 머릿속의 아몬드- 강지현(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19-07-15 20: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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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소년이 있다. 그는 웃지 않는 아이였다. 세상 사람들은 소년을 ‘괴물’이라 불렀다. 친구가 위협하고 때려도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눈앞에서 엄마가 죽어도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감정이 거세된 소년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모른다. 로봇처럼 세상을 곧이곧대로만 보는 아이. ‘2019 창원의 책’으로 선정된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 이야기다.

    ▼윤재는 보통 사람들보다 작은 편도체를 가졌다. 편도체는 뇌의 변연계에 속하는 구조의 일부로, 감정 반응에 관여한다. 아몬드(almond)처럼 생겼다고 해서 ‘amygdala(아미그달라·라틴어로 아몬드를 뜻함)’라는 영어 이름이 붙었다. 편도체 기능이 손상되면 감정 표현 인식, 특히 공포나 혐오와 관련된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윤재의 상태를 심리학 용어로는 ‘감정 표현 불능증(Alexithymia)’이라 한다. 구정인의 만화 제목 ‘기분이 없는 기분’ 같은 상태 말이다.

    ▼가끔은 감정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감정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후회할 게 뻔한 일을 저지를 때가 그렇다. 때론 불필요한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며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는 나의 진짜 감정을 모를 때도 있다. “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야, 웃고 있다고 기쁜 것만이 아니듯이”라는 윤재의 말처럼. 하지만 감정은 분명 축복이다.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며, 분노할 때 함께 분노할 줄 아는 것은 ‘인간다움’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현대를 ‘공감불능사회’라고 말한다.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서로의 감정을 헤아리고 나누는 건 어려워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작은 아몬드를 가진 윤재가 남긴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강지현(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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