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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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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버지, 아버지- 민창홍(시인)

  • 기사입력 : 2019-07-04 20: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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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나는 ‘오디세이 세미나’라는 책을 읽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아버지는 81세로 은퇴한 대학교수다. 어느 날 아들에게 “나도 네 강의를 들을 수 있겠냐?” 하고 물어온다. 그 아들은 그리스 비극을 전공한 고전학자이며 문학평론가다. 자신의 강의를 듣겠다는 엄격한 아버지의 요청이 부담스러웠지만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겠다는 약속에 승낙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오디세이 세미나’의 청강생이 된다.

    아버지는 차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서 강의를 들으러 온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토론 수업을 하며 자신의 주장을 펴서 아들을 당황하게도 만든다. 그러면서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도 떠올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도 한다. 16주의 강좌가 끝난 후에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따라 ‘오디세이 유람선 여행’을 하면서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고통 속에 살아온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한다.

    오디세우스와 그 아들 텔레마코스, 그것을 노래한 오디세이를 가르치는 저자와 청강생 아버지, 교사인 나와 농사짓는 아버지가 오버랩되면서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급변하는 이 시대에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이어야 하는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완고하고 무서웠다. 늘 침묵으로 일관하는 시간이 많았다.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어머니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많았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말하면 굵고 짧게 말씀하시는 게 고작이었다. 그중에서도 돈이 필요할 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씀드리면, 아버지는 ‘돈 주는 기계냐’ 하시며 꾸중을 하시었다. 그런 아버지가 짊어지고 가는 가난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아버지는 1953년 전쟁 중에 입대하여 휴전 후에는 전시 상황에서, 제대라는 것이 없어 무한정 군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신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버지는 초등학교 과정을 수료하지 못하고 서당에서 4서 3경을 읽은 것이 학력의 전부다.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군 생활을 하고 돌아와 변변한 학력이나 기술 없이 평생 가난한 농부로 살아오신 아버지, 여느 아버지들처럼 자신의 고생은 차치하고 자식들이 잘되는 일에 큰 행복을 느끼시는 아버지, 이제 늙어 가시는지 최근에는 살아온 이야기와 집안 이야기며 문중의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

    최근 한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남편이 할 일은 돈을 버는 것이고 아내가 할 일은 가정과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라는 의견에 68.8%가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사회의 여러 변화 요인으로 인하여 결혼이 늦어지면서 저출산 문제도 나타나고 부부의 성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는 보고다.

    오늘날에는 핵가족화로 부부의 사랑과 자녀들과의 소통이 강조되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복잡한 사회생활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무게감도 있다. 아울러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는, 나침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오디세이 세미나’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아들과 여행을 하면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는 언제나 고향을 지키는 고목처럼 버팀목이어야 한다고.

    민창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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