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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비례대표제 적폐 아닌가?- 허승도(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9-06-12 20: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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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에서 오래된 적폐는 무엇일까?

    29년 전 국회 출입기자를 시작했을 때, 전국구의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부자다’, ‘정치권력에 줄을 잘 섰다’로 요약된다. 전국구제도가 정치자금 조달과 정치권의 논공행상에 이용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구의원을 왜 없애지 못하는지 의문도 가졌다. 전국구에서 비례대표로 명칭이 변경됐지만 이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달 한국외식업중앙회 제갈창균 회장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이 시각은 더 굳어졌다.

    제갈 회장의 발언은 비례대표제의 실상이 어떤지, 우리 국민들이 비례대표의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그다지 이슈가 되지 않고 조용하게 넘어갔다. 여야 모두 비례대표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제갈 회장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특정 정당과 후보를 어떻게 도왔는지 공개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20만명 진성당원을 만들어서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5대 일간지에 1억원을 들여 지지성명을 했다”, “2016년 우리 단체가 비례대표를 신청했고, 새벽까지 운동해서 (비례대표 순번에서) 12등을 했는데 결과는 28등으로 조정했더라. 당 대표가 배신했다”는 말을 했다.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각종 단체의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대목이다.

    이해찬 대표가 비례대표 요구에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아 제갈 회장의 발언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킨 이 발언을 정치권에서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여기서 비례대표제의 유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례대표제는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이 ‘정국 안정’을 이유로 제6대 국회부터 도입했다. 지역구선거에서 정당 간 득표율을 기준으로 전체 국회의원의 4분의 1(44명)을 전국구의원으로 선출했다. 문제는 전국구의원 배분을 제1당의 득표율이 50%를 넘으면 전국구 의석의 3분의 2를 넘지 않은 선에서 득표율에 따라 배정하되, 득표율이 50% 미만이면 득표율에 관계 없이 전국구의 2분의 1을 배정하도록 한 것이다. 민의와 상관없이 제1당이 원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도록 만든 나쁜 제도였다.

    제9대 국회에서 전국구 대신 ‘유신정우회’가 도입됐다가 10·26 이후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들어선 후 11대 국회에서 비례대표제가 부활됐다. 지역구 의석의 절반(92명)을 전국구로 배정했는데 역시 제1당이 유리하도록 했다. 전국구 의석은 제1당에 무조건 3분의 2를 배정한 것이다.

    14대 국회부터 제1당에 비례대표를 우선 배정하지는 않았으나 지난 2001년 헌법재판소가 ‘1인1투표’를 통한 비례대표 배분방식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17대 국회부터 현재와 같은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도록 했다. 하지만 각계 전문가를 국회에 진출시켜 전문성을 입법과정에 반영하겠다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살리지 못하고 선거 지원 대가, 정치 보스들의 자기 사람 심기 등 악습은 계속되고 있다. 제갈 회장 사례만 봐도 국회의원 비례대표제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50%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다. 군소정당의 난립을 초래할 위험성과 역기능을 고려하지도 않고 당리당략에 따라 과거 군부세력이 한 행동을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는 태생적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 비례대표제가 적폐인지 아닌지 고민할 때다.

    허승도(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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