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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삶의 속도를 늦추면- 이종훈(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19-06-10 20: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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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바쁜 일상을 탓하면서 사물을 깊게 보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가서도 사진 한 장 찍고, 풍경 잠깐 보고, 또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 발걸음을 멈추면서 제대로 보고 듣고 견문을 넓혀야 삶이 풍족해질 것인데 대부분 겉핥기만 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뛰다 보니 삶의 속도를 늦출 수 없었고 또 볼 수 있는 ‘시선’을 기를 겨를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에게 그 변명은 사치에 불과하다. 헬렌 켈러는 어느 날 숲속을 거닐다 온 친구에게 뭘 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특별한 게 없었다’고 대답하는데 두 눈을 뜨고도 그런 대답을 한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시각’이 단지 편리한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내가 만약 대학 총장이라면 눈을 사용하는 법(강좌)을 개설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글로 적는다.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그다음 바람에 나풀거리는 나뭇잎과 들꽃, 그리고 석양을 보며, 마지막으로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멋진 공연을 볼 거라고 정한다. 헬렌 켈러는 이것을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이란 제목으로 1933년 한 잡지사에 발표했다. 이 글은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으로 허덕이던 미국 시민에게 큰 용기를 줬다고 한다.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란 말이 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그 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유교 경전 중 ‘대학’에 나온 말이다. 흘려 보고 듣느냐와 깊이 보고 듣느냐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들을 진정으로 볼 수 있다면 사회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삶의 속도를 늦추면 깊게 볼 수 있는 게 무한정인데 안타깝기만 하다.

    이종훈(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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