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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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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98) 제24화 마법의 돌 98

“비 오는데 조심해”

  • 기사입력 : 2019-06-04 08: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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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와 거래하는 사람들은 모가 난 것보다 원만한 것을 더 좋아했다.

    “다녀올게요.”

    류순영이 류관영과 단양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단양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시멘트 사업 때문이었다. 시멘트 사업을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해방이 된 것이다. 전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재영이 시멘트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었다.

    “비 오는데 조심해.”

    이재영은 가게 앞에서 류순영을 배웅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알았어요.”

    류순영이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탄 차가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이재영은 류순영과 류관영이 보이지 않자 가게에서 커피를 마셨다.

    가게는 서서히 활기를 띠어갔다. 배급을 하던 물자들도 보급이 되고 사람들도 자유롭게 물품을 사고팔았다. 박두영은 아침에 출근하여 이재영에게 인사를 한 뒤에 건준 사무실로 나갔다.

    나츠코가 찾아온 것은 점심 때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그녀는 큰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다. 가게 앞에 서 있는 나츠코를 본 이재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흩날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나츠코가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찌 여기까지….”

    이재영이 주위를 살핀 뒤에 나츠코에게 물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나츠코가 이재영을 살폈다. 그녀의 눈빛이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물론이오. 차 한잔 마시겠소?”

    “네.”

    이재영은 나츠코를 데리고 다방으로 갔다. 해방이 되면서 다방도 왁자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방에 모여 나라를 세우는 일로 떠들썩했다.

    “어떻게 혼자서 왔소?”

    다방의 구석에 앉아서 나츠코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일본에 있어요.”

    나츠코는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부군은?”

    “죽었어요.”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나츠코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천황폐하의 항복 방송을 듣고 할복했어요.”

    이재영은 나츠코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천황을 위해 전쟁을 하고 천황을 위해 죽다니. 시마무라의 삶과 죽음이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천황이 항복방송을 한 뒤에 많은 일본인들이 울고, 할복한 이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이오?”

    이재영은 나츠코를 조용히 응시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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