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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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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가정법을 적용할 수 있다면- 김영일(수필가)

  • 기사입력 : 2019-05-30 20: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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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법이란, 과거의 일을 현재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법을 붙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거나 반성할 때 써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만약 신돈의 개혁이 실패하지 않았다면’처럼 회한이 깊을 때 적용할 수 있다.

    남북, 미북, 북중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현안이 차고 넘쳐도 오히려 볼 게 없다며 뉴스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로남불과 이전투구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이 보기 싫어서일 것이다. “정치는 2류가 하는 것”이라고 어느 중진 국회의원이 방송에 나와 고백하는 걸 봤다. 똑똑하고 소신 있는 사람도 금배지만 달면 한통속이 되는 것은, 선수(選數)가 서열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패거리(朋黨)정치와 당파싸움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 뿌리는 조선 건국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국정논단의 주역인 권문세족을 척결하기 위해 신돈(辛旽)이 발탁한 교양(士) 있는 관료(大夫), 즉 신진사대부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성균관 대사성 이색과 그의 제자 정몽주, 정도전 등은 신돈의 개혁전사로 참여했다. 하지만 개혁 실패 후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정도전 세력(훈구파)과 초야에 묻혀 성리학을 가르치던 정몽주의 후학 길재와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사림파로 나눠지면서 파당이 시작되었다. 훈구파의 폭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단행한 성종의 개혁 파트너로 사림파가 지목되면서 두 세력 간에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연산군 때 촉발된 무오사화를 시발로, 조선이 망할 때까지 백성의 안위는 외면한 채 이합집산과 끝없는 당쟁으로 인해 나라는 도탄에 빠졌다. 결국, 왜와 여진에 짓밟히고 일제에 강제 합병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국토가 양분되어 민족상잔을 치렀지만 이념과 진영논리에 빠져 지금까지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만약, 노국공주가 일찍 죽지 않고 공민왕이 신돈을 믿고 끝까지 힘을 실어 주었다면 개혁은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고 고려멸망과 조선건국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명분싸움이나 패거리정치 같은 후진적 정치 양상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 연말, 서울에서 개최될 신돈 학술대회가 희망의 씨앗이 되고 혜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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