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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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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89) 제24화 마법의 돌 89

“일본은 그런 걸 가리지 않아요”

  • 기사입력 : 2019-05-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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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 긴 사랑이 끝났다. 이재영은 류순영의 가슴에 엎드렸다. 그녀의 풍만하고 따뜻한 가슴이 부드럽다. 창밖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좋아.”

    류순영이 이재영을 껴안고 눈을 감았다. 이재영은 그녀의 가슴에 엎드려 잠들었다.

    이튿날은 날이 화창했다. 지난밤에 내린 눈도 밤새 녹았다.

    경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진주역으로 갔다. 진주역에서는 삼일상회에 먼저 들렀다. 진주 삼일상회는 이재영의 육촌 동생이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트럭을 빌려 청학동으로 갔다. 아들 정식이 거처하는 집은 쓰러져가는 초옥이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해 10리나 산길을 걸었다.

    “아버지!”

    정식은 툇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잿빛 승복을 입고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승려로 보였다.

    “이러다가 중이 되겠구나.”

    이재영은 정식을 보고 웃었다. 류순영은 아들을 보자 눈물이 글썽했다.

    “어머니도 오셨네요.”

    정식은 류순영을 보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에미는 오면 안 되냐?”

    류순영이 정식의 손을 잡았다.

    “그럴 리가 있나요? 어머니가 너무 힘들까봐 그러죠.”

    정식이 류순영을 안아주었다. 이제는 키도 크고 어른스러웠다.

    “아들 보러 오는데 뭐가 힘들어? 음식 좀 준비해 갖고 왔는데 먹어라.”

    류순영이 음식을 펼쳤다. 이재영은 정식이 보던 책을 살폈다. 정식은 뜻밖에 영어책을 보고 있었다. 도쿄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했다.

    “고기까지 싸오셨어요? 여기는 암자인데…….”

    정식이 삶은 돼지고기에 새우젓을 찍어 먹으면서 말했다.

    “일본 사람이 하는 절은 고기도 먹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더라. 절에 기저귀가 잔뜩 널려 있어 좀 이상하더라.”

    일본 절은 조선의 절과 달랐다. 중들이 술과 고기를 먹고 아기까지 낳았다.

    “일본은 그런 걸 가리지 않아요.”

    “여기는 스님도 없고 부처도 없는데 무슨 암자야?”

    “옛날에 어떤 스님이 여기서 득도를 했대요.”

    “너는 그런 거 하지 마라. 마음속에 부처가 있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고기를 안 먹을 거야?”

    “먹고 있어요. 부처님도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결혼도 했는데요.”

    정식의 너스레에 모두 웃었다. 이재영도 류순영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류순영은 아들 집에 와서인지 청소도 하고 빨래도 했다.

    “나무는 누가 하냐?”

    이재영은 부엌 앞에 장작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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