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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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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비 - 손택수

  • 기사입력 : 2019-05-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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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많이 내린 한겨울이면 새들에게 모이를 줘서 아들 내외에게 자주 잔소리를 듣던 함평쌀집 할머니



    세상 버리던 날 새들은 오지 않았다 밥 달라고, 밥 달라고, 아침부터 찾아와 양철문을 바지런히 쪼아대던 새들



    등쌀에 이놈의 장사도 집어치워야겠다, 그 아드님 허구헌 날 술만 푸고 있더니



    쌀집 앞 평상마루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들려준다 장지의 소나무 위에서 울던 새울음 소리가 어째 영 낯설지만은 않더라고



    울 어매가 주는 마지막 모이를 받으러 왔나 싶어 고수레 고수레 한 상 걸게 차려주었더니, 구성진 곡비 소리 해종일 끊이질 않더라고



    - 시집 <호랑이 발자국> 중에서

    ☞‘곡비(哭婢)’는 과거 양반의 장례 때에 행렬의 앞에 가면서 곡을 하는 계집종을 이르던 말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추운 겨울 눈이 내려 먹을 걸 찾지 못한 새들을 위해 함평쌀집 할머니가 모이를 주던 그 새들의 곡비다. 아들은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물색없이 밥 달라고 쪼아대는 새들의 등쌀에 쌀장사를 집어치우고 싶다가도 문득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서 술만 푸다가 어머니 가시던 날 보이지 않던 그 새들이, 장지에 와서 마지막 고수레 받아먹고 해종일 울던 그 새가, 어머니 거두어 키우던 새인가 싶어 사무쳐서 또 술만 푸고.

    우리 조상들은 들일을 나가서 밥을 먹기 전 항상 고수레를 했다. 그건 길짐승을 위한 지극한 마음의 발로였다.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두는 것 또한 겨울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날짐승을 위한 마음이었다. 한낱 짐승이지만 귀히 여기는 마음은 마땅히 지녀야 하는 측은지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 고수레와 까치밥을 잊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그 마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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