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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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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위태로운 황혼의 삶 어쩌면 좋으랴- 조광일(수필가)

  • 기사입력 : 2019-05-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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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노인 혐오와 간병의 비극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벌어져 슬픔과 동정, 당황, 분노와 같은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다. 얼마 전, 서울 다세대주택 셋방에서 말기 대장암 진단을 받은 50대 후반의 한 남편이 5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다가 “아내보다 내가 먼저 갈 순 없다”며 동반 자살한 데 이어, 엊그제 군산에선 80대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던 할머니를 10년 동안 보살피다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남편은 자기마저 감당하기 힘든 병에 걸리자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차마 따라가지 못한 채 숨진 아내 곁에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노노(老老) 돌봄’이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충남 예산에서는 치매 간병 할아버지의 또 다른 사연이 전해졌다. 아내의 치매를 직접 돌보기 위해 아흔한 살의 할아버지가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험에 도전하기 전 할머니에게 “내가 당신을 위해서 꼭 하고 싶다”고 했단다. 30~40대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겨운 시험이라 내심 걱정이 됐지만, 나야 당신이 돌봐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아내의 응원에 힘을 냈다며 애수가 섞여 있는 사연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가 조기 한 마리를 사더라도 꼭 홍성장을 고집해서 늘 차에 태워간다며 “우리 두 사람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는 날까지 내 손으로 돌보고 싶다”는 가슴 뭉클한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앙드레 고르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나의 뇌리를 스쳤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고통스런 불치병에 걸린다. 그는 모든 활동을 접고 아내를 시골로 데려가 20여년을 보살핀다. 그러다 10년 전 아내와의 첫 만남부터 최근까지, 80을 넘긴 노부부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애정 표현을 담은 한 통의 긴 편지를 써 책으로 남긴 후 함께 목숨을 끊어 58년 해로를 마감한다. 그가 쓴 에는 작가 자신을 긍정의 세계로 이끌어준 아내에 대한 감사, 결혼생활이 얼마나 행복했으며 사랑하는지에 대한 고백,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다짐한다. 이승의 문턱을 함께 넘으며, 부부의 연(緣)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치매 환자 학대는 5046건에 달한다. 지난 2013년 831건, 2014년 949건, 2015년 1030건, 2016년 1114건, 2017년 1122건 등이다. 치매 노인 학대는 주로 가정 내에서 발생했으며, 지난해 치매노인 학대 피해자 1122명 중 770명(68.6%)이 가정이었다고 한다. 치매와 난치병을 개인이 알아서 감당하라는 건 가혹하다. 꽃 한 포기 없는 민숭한 집, 사람의 훈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셋방에서 아내와 함께 마지막 결심을 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울컥 서러운 덩어리가 목구멍으로 북받쳐 오른다.

    불교에서 부부의 인연은 수천 겁의 선연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깊고 깊은 인연조차 감당할 수 없게 만드는 노년의 삶이 점점 위태롭게 다가오는데, 어쩌면 좋으랴.

    조광일 (수필가)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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