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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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인] 이상대 경상남도농업기술원장

“먹거리 산업·인력 키워 농업 경쟁력 강화”
새 품종·기술 개발은 경남농업의 동력
원천기술 연구·보급, 전문인력 양성 집중

  • 기사입력 : 2019-04-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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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때부터 부모 밑에서 배워 온 농사일, 당시는 굶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농사일이 평생의 일이 됐다. 경남농업은 물론 국내 농업의 미래를 이끄는 경남농업기술원의 수장, 이상대 원장은 평생 농업발전을 위한 관련 연구에 매진했다. 어느덧 공직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지만, 그는 꽉 짜인 바쁜 업무에 한가로움을 즐길 여유가 없다.

    벤처농업 육성과 지역 특산물의 상품화에 기여하고, 각 도의 대표적인 농업기술센터에 농산물종합가공센터를 설치해 농산물 가공기술 개발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과잉 농산물의 수급 조절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등 국내 먹거리 산업에 큰 공을 세웠지만 아직도 그는 할일이 많다며 걸음을 재촉한다. 농업이 인생의 전부라고 하는 이상대 원장을 만나 농업기술원의 역할과 그의 꿈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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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대 경남농업기술원장이 농업기술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남농업기술원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경남농업기술원은 벼농사, 밭농사, 원예, 과수 등 농업의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사업과 개발된 기술을 영농현장에 보급해서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일을 수행한다. 농업 경쟁력 향상의 원동력이 되는 농업인 교육사업 추진, 농촌지도자, 생활개선회, 4-H회 등 농업인 학습단체 육성 등 농업 전문인력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1908년 진주종묘장을 시작으로 111년의 역사가 있는 기관으로, 1982년 현 진주시 초장동 청사로 이전했다. 2개 국, 8개 과, 5개 연구소, 34담당으로 구성돼 연구직, 지도직, 일반직 공무원 1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초전동 본청에 최첨단 시설원예 유리온실인 ATEC과 농업전문교육시설인 미래농업교육관, 그리고 토양분석과 병해충 진단 등을 담당하는 생명과학연구동 등 연구 및 농업인 교육시설들이 있다. 창원 화훼연구소, 김해 단감연구소, 창녕 양파연구소, 거창 사과이용연구소, 함양 약용자원연구소 등 모두 5곳에 지역특화작목 연구소가 설치돼 미래 경남농업의 동력이 될 새로운 품종과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다.

    -원장님에게 농업이란 무엇인지.

    ▲저에게 농업은 인생 전체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다. 어린 시절, 적은 농사였지만 가족의 배를 굶기지 않으려고 부모님으로부터 하나에서 열까지 배워 온 터라 농사일에는 익숙하다. 학창시절에는 4-H 활동을 하면서 지덕노체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겨 영농 과제 활동을 통한 사회성을 키웠고, 사회 진출을 농촌지도직공무원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줄곧 이어왔기에 농업은 제 인생의 전부인 것이다.

    -연구분야에 평생 매진했는데, 이 일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어떤 연구를 했나.

    ▲1980년 6월 공직생활을 농촌지도직으로 출발해 약 8년간 농촌 현장을 다니면서 농업인과 같이 고민하고 농업의 미래를 그렸다. 1988년 농촌진흥청에서 전국의 지도직을 대상으로 2년간의 장기교육 기회가 주어져 지금의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부 곤충과에서 연구 방법을 배웠고, 그 후 울산시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다 1992년 현 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로 전직해 연구 업무를 수행해 왔다.

    연구직 전직 이후 처음 맡은 업무가 농산물 이용 분야였다. 그때만 해도 농산물을 가공하고 저장하는 업무는 민간의 영역으로 공공기관에서는 전공자도 부족했고, 뚜렷한 방향성 없이 조직만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연구기자재, 새로운 시설을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됐고, 1995년 경남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농산물 가공센터를 지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시기에 벤처농업이 활발해지면서 농업인들이 현장애로 해소를 위한 기술 개발을 많이 요구했다. 대표적으로 장생도라지와 협업연구, 매실 가공기술 개발, 하동녹차 가공품 개발 등 다양한 제품 개발에 나섰고, 녹차세제의 경우 벤처농업 육성과 지역 특산물의 상품화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특히 전국 각 도에 농산물종합가공센터를 설치해 국내 과잉 농산물의 수급 조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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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대 경남농업기술원장.

    -가장 보람 있었던 일, 가장 아쉬웠던 일은?

    ▲농업기술원에 근무하는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은 2002년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이다. 그 당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농산물가공센터를 전국 최초로 설치해 지역특산물 가공기술 개발과 신기술 특허출원, 그리고 그 기술들을 농업인과 산업체에 이전함으로써 농산물 부가가치를 높인 일들이 공적으로 인정이 돼서 분에 넘치는 상을 받았다. 또 하나는 농촌진흥청의 농촌진흥사업 종합평가에서 경남농업기술원이 지난해 15년 만에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전 직원이 혼연일체가 돼 한마음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수상 보람이 더 컸다.

    아쉬웠던 점은 2000년대 초, 농산물가공센터를 운영하면서 더 많은 농산물 가공기술 개발과 기술이전을 해서 벤처농업산업의 기틀을 완전히 다지지 못한 점이다. 그 당시에는 처음이라는 장벽이 너무 높아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는 기억이 추억처럼 떠오른다.

    -올 연말 공직생활을 은퇴하는데, 소회는?

    ▲참으로 행복한 공직생활을 보냈다. 공무원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부족했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항상 역지사지를 떠올리며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직원들이 함께 만든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공직생활은 동료 직원과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 있다.

    퇴직하면 고향 울산으로 돌아가 조그만 농지를 가꾸면서 행복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제대로 하고 싶다. 농부의 삶을 체험하면서 가족과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시간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과 남은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평소 농업인들과 같이하는 시간에 도전, 열정, 그리고 정성을 다하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도전은 이미 농업이라는 공직에 발을 내딛고 출발을 한 것이라 오직 농업, 농촌, 농업인만 바라보고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저 또한 제 생의 전부를 이 정신과 함께했다. 열정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한다. 19년의 유배생활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과골삼천’의 열정을 우리 공직자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성을 이야기함에는 2015년에 소개된 역린이라는 영화의 명대사를 언급한다. 정조가 상선에게 중용 23장의 정성을 말하게 하는 내용으로,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저 자신도 아직 모두 실천하지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남은 인생에 꼭 하고 싶은 일은 ‘사람으로 태어나 적어도 1000명은 먹여 살려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을 꼭 실천해 보고 싶다.

    글·사진=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 이상대 원장은

    1960년 울주군 출신으로 언양농업고등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석사(응용곤충학)와 농학박사(응용곤충학)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울주군농촌지도소 농촌지도원보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1992년 경남농업기술원 시험국 식물환경과 농업연구사로 전직, 시험연구국 농산가공담당, 시험연구국 토양비료 농업연구관을 거쳐 양파연구소장, 미래농업과학센터 팀장, 연구개발국 친환경연구과장, 연구개발국장 등 연구직에서 몸담아 오다 2017년 1월에 경상남도농업기술원장으로 임용됐다. 그동안 농촌진흥청장상, 경상남도지사상, 행정자치부장관상, 대산농촌문화상, 세계농업기술상, 농촌진흥청장상 등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28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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