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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33) 진해 여좌동 문화공간 ‘모퉁이’

빈 집 창고 ‘모퉁이’에 문화햇살 스며들다

  • 기사입력 : 2019-04-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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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분홍의 벚꽃이 피고난 자리에 초록이 물들었다. 여좌천로를 따라 이어진 개천에는 피라미들이 노닐고 봄마중 나선 꽃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황색 지붕에 짙은 보라색 대문, 담벼락에는 나비가 살며시 날아와 앉았고, 다른 한편에는 물고기들이 춤을 춘다. 마당 앞 창고 옥상의 대형 파란 물탱크가 눈길을 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마을 어귀에 들어선 문화공간 ‘모퉁이’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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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여좌동 마을주민들이 지난해 10월 말께 문을 연 문화공간 ‘모퉁이’.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로 166. 평지마을 귀퉁이에 마을 주민들을 위해 지난해 10월 말께 문을 연 마을 문화공간 ‘모퉁이’.

    작은 방 2개, 마루 그리고 마당.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모퉁이’에는 여좌동 마을사람들의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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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소담한 도시락 파티도 열고, 때로는 커피 타임도 이뤄진다. 마을의 주요한 일들이 있을 때는 주민들이 모여 의논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 어떤 마을인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소소하고 행복한 일거리들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이처럼 문화공간 모퉁이는 작은 소모임을 비롯해 문화활동, 작업공간 등 주민들의 다용도 문화생활 공간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근 여좌 주민은 물론 진해구 주민이면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어서 모두가 좋아할 만한 공간이다.

    문화공간 ‘모퉁이’의 태생은 문화적 욕구에 대한 여좌동 주민들의 갈급함에서 시작됐다.

    문화에 대해 목말라하던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를 실천으로 옮긴 결과물이다.

    문화공간 모퉁이 서현란 간사는 “지역민들이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았어요.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사실 인근에 사는 아기 엄마들과 주부들이 모여 프랑스 자수, 민화,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수업을 하고 싶어했지만 공간이 없어 커피숍에 모여 수업을 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눈치보며 모임을 자주 가졌어요. 그렇다고 주부들이 공방을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공간만 있으면 원데이 수업도 받을 수 있고, 여성창업자들의 경우 창업공간이 될 수도 있는, 정말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 문화놀이터가 절실했어요”라고 말한다.

    꿈은 현실이 됐다. 2017년 9월 창원시 도시재생센터에서 ‘블라썸 여좌’라는 도시활력증진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좌동 주민 15명이 모여 도시재생주민협의회를 구성하게 됐고, 이듬해 9월 주민공모사업을 신청, 선정되면서 방치된 빈집을 문화가 머물 수 있고 문화를 행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당시 이들은 공간이 없어 지역의 인근 신협 건물 회의실, 공부방, 커피숍 등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지원비(500만원)로 여좌천 길모퉁이에 창고로 사용되던 방치된 빈집을 문화가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창고로 사용되던 빈집 주인인 김귀철(여좌동 주민자치위원장)씨는 이 공간을 2년간 무료로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마당을 가득 메웠던 플라스틱 상자와 지붕 페인트칠, 청소, 철거 등 도배와 바닥장판을 제외한 나머지를 주민들이 함께 손을 맞잡았다. 어려움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아니었기에 낡은 지붕 위의 불순물을 걷어내고 새롭게 페인트 칠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화장실 배관을 비롯해 주방 배관 등 집안 곳곳을 손질하면서 겪는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민 이영순(도시재생주민협의회 위원장)씨는 “20여 일 동안 빈집 정비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움도 정말 많았고, 공간에 대한 의문을 가진 주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이 공간을 주민들이 좋아하고 아낀다”고 이야기한다.

    문화공간 모퉁이에서 여좌동의 행복한 이야기가 이렇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말 문화공간 모퉁이 개소식 날에는 인근의 많은 주민들이 참석해 기쁨을 함께 나눴고, 다음 날 개소기념으로 개최된 ‘여좌동 핼러윈 파티’에서는 어른·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웃음꽃을 피웠다. 마을주민 홍승임씨 등은 누렇게 잘 익은 호박에 핼러윈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냈고, 이진우·강종일·김연회·김귀철·이영순씨 등 일부 마을주민들은 난생처음 마녀·해골·호박분장을 한 핼러윈으로 분해 아이들을 반겼다. 핼러윈 복장으로 행사에 참가한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나눠줬고, 핼러윈 소품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면서 공간은 축제의 장이 됐다. 그렇게 주민들에게 멋진 핼러윈의 밤을 선사한 문화공간 모퉁이가 이제는 새로운 주민들의 배움의 장이 되고, 놀이의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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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핼러윈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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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핼러윈 파티 행사 때 사용할 호박을 다듬고 있다.

    11월에는 (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모퉁이를 찾아 여좌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같은 달 말에는 진해 아크베이커리 이상기 대표가 ‘프랑스의 시간을 걷다’를 주제로 주민들에서 프랑스에서 만난 신선한 빵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어떤 날은 주민 서너 명이 모여 집에서 가져 온 각종 음식들로 점심 도시락 파티를 열었다. 계란말이, 찐고구마, 잡채, 유부초밥, 편육, 호박죽, 떡, 케이크, 충무김밥 등 갖가지 음식들로 한상 가득 채워졌다. 특히 호박죽은 핼러윈 행사 때 사용한 늙은 호박으로 만들어 최고의 맛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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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운영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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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이 마련한 음식으로 열린 도시락 파티.

    지난 2~3월에는 주민들이 모여 군항제를 찾는 관광객을 위한 여좌마을 관광지도 제작과 이들에게 판매할 벚꽃화관을 이곳에 모여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한상 가득 차려지면서 문화공간 모퉁이는 어느새 지역민들의 ‘문화놀이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문화공간 모퉁이는 빈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예비창업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간을 일정 기간(2~3개월) 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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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이 문화공간 ‘모퉁이’에서 회의를 열고 있다.

    ‘언론을 통해 문화공간 모퉁이를 알게 됐다’는 예비창업자 이영도(45)씨는 “재건축·재개발 컨설팅 관련업을 창업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무실을 알아보던 중 저렴한 가격에 사무공간을 빌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오게 됐다”며 “다른 사무실도 알아봤지만 목돈이 들어 많은 비용에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모퉁이에 당분간 창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공간 ‘모퉁이’의 산파 역을 담당한 마을주민 이영순·서현란·강정희씨는 “문화공간 모퉁이 인근 진해내수면 환경생태공원은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이를 활용해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모퉁이에서 다양한 체험도 하고 핸드메이드 프리마켓도 운영해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에게 볼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주민들을 위해 민화, 자수,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여성창업자들을 위한 창업공간을 운영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문화놀이터로 조성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 모퉁이는 이렇게 진해 여좌주민들의 곁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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