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7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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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낮에는 의사, 밤에는 로커 이재준 부산 미래여성병원장

하얀가운 입고 생명을 가죽재킷 입고 열정을 노래해요

  • 기사입력 : 2019-04-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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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들 산부인과 의사는 생명의 신비로움에 감동하면서 아기의 첫울음이 터지는 기쁨의 순간에 함께할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기자는 부산의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밤이 되면 로커로 대변신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부산진구 개금동 미래여성병원, 그냥 고만고만한 산부인과 병원이겠지 하고 도착했는데 병원 콘셉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 직원은 “경남과 부산에서 제일 큰 산부인과 여성병원이고, 수년째 경남과 부산에서 분만율 1위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대충 봐도 병원 진료 보드에 전문의가 약 20명이다.

    진료실에서 마주한 이재준(52) 원장은 역시 소문대로 범상치 않았고, 긴 로커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매, 어깨까지 닿는 장발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원장실 벽면 곳곳에는 대학 밴드 시절 그의 사진과 음악 팬들이 그려준 초상화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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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미래여성병원장이 공연을 하고 있다.

    이 원장은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지만, 집이 어려워지면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배신감과 고통을 겪었다. 힘들 때 찾아온 건 음악이었다. “당시 주변에 소위 ‘노는 친구’가 많아서 나쁜 길로 빠졌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위로가 된 것이 음악이었어요. 혼자 운동장 구석이나 학교 뒷산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 힘든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의대에 진학해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의 힘이기도 했지만, 담임선생님의 눈물겨운 관심과 지도 덕분이었다.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 20여년 전부터 술과 담배를 끊었고, 머리도 지금처럼 기르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어린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다 보니 평상시도 가죽점퍼와 찢어진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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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미래여성병원장이 병원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 30년간 밴드 활동과 150회가 넘는 무대 공연으로 프로젝트 밴드 ‘이심(二心)’이라는 이름으로 생애 첫 앨범을 발표했다. 이 원장이 직접 작사·작곡한 앨범만도 수없이 많다. 주로 뉴에이지풍의 배경음악이 주를 이룬다. 병원 업무에 앨범 준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콘서트를 앞두면 퇴근 후 매일같이 병원 인근 연습실을 찾아 밴드 후배들의 든든한 맏형 역할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음악은 제게 인생이자 치유입니다.” 좋아서 즐기다 보니 기부 콘서트마다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록과 힙합, 가요 등 다양한 장르로 자신을 치유한다고 했다.

    이른바 잘나가는 산부인과 병원장인 그는 산모육아교실 쪽에서는 이미 ‘노래하는 산부인과 의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음악에 주관이 뚜렷했다. “우리는 즐기는 음악을 하자는 주의이다. 음악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난도 높은 음악은 일부러 안 한다. 대중이나 관객이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즐기면서 관객도 더불어 함께 즐기는 음악을 추구하다 보니 장르 구분도 없다. 록을 기본으로 해서 정통 록, 발라드, 가요 등을 넘나들며 우리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인다”고 했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야자) 때 사연이 있다. “야자 수업 빼먹고 도망가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영혼을 정화시켜 주는 듯한 노래를 만났다. 그때부터 이런 훌륭한 가수가 되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이런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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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미래여성병원장이 공연을 하고 있다.

    바로 그 가수가 나훈아였다. “물레방아 도는데, 고향역, 잡초 등 제가 영향받은 노래는 헤아릴 수 없다. 나훈아는 늘 우리에게 잃어버린 고향을 일깨워 줬고,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시름을 잊고 너무 편안했다. 나훈아는 자기 혼자 부르는 게 아니고 다른 이에게 다가가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능력을 지닌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호소력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일찍이 고교 야자 때 나훈아를 사사한(?) 그의 노래 솜씨는 의과대 재학 중에 인제대 의대 록밴드 ‘파이오니어(Pioneer)’로, 의사가 된 후에는 록밴드 ‘레벌 옐(Revel Yell)’과 ‘미래록’9으로 밤무대를 주름잡으며 빛을 발했다.

    그는 평소에도 산모들에게 “노래 듣고 즐거우면 그게 가장 좋은 태교다. 음악을 몰라도 살 수 있지만 음악을 알면 인생이 더 즐겁고 풍요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원장은 삶의 고비마다 음악에서 위로를 받는데 도시락(樂) 콘서트를 계속한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도시락(급식) 비용을 지원하는 록 콘서트로 지난 2004년부터 후원자이자 초대 밴드로 동참하고 있다. 태교음악과 천체물리학에도 관심이 많다. 밴드 이름도 오리온 자리 방향에 있는 청색 초거성 ‘리겔(Rigel)’과 같다.

    태교음악은 임신에서 출산까지 과정을 그린 앨범 ‘기다림’으로, 10여년 전부터 구상해 산부인과 의사와 음악이라는 우연의 조건이 결국 태교음악이라는 필연의 결과물이 된 셈이다. 기존과 다른 태교음악으로 핵심은 파동인 태교음악 ‘기다림’은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태아는 우리처럼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따라서 학문적인 견해도 없다. 객관적이고 경험적이지 않다. 선험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는 여기에 주목하고 앨범 ‘기다림’에서 경험과 지식의 이전 단계에 있는 태아가 엄마와 만나는 순간까지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과연 원초적인 음악은 어디서 왔을까. 산과 하늘, 강과 바다, 태풍과 천둥, 심지어 지구의 형태에서도 소리는 만들어진다. 바로 거기서 출발한 소리가 선험적이고 직관적인 태초에 가까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병원 일 외엔 음악 듣고 글 쓰는 일을 주로 한다. 음악을 끼고 산다. 운동 중에도, 차를 타서도, 출장길에도, 비행기에서도 음악과 사랑을 나눈다. 산모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다. 산모 이전에 여자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요즘 산부인과는 인프라가 붕괴돼 기록적인 저출산 현상으로 울상인데 2001년에 개원한 미래여성병원은 국내 최초로 병원 내 산후조리원을 도입했고, 경남·부산 최고의 여성병원으로 그가 그동안 만난 신생아는 최소 2만명이 넘는다고 했다.

    6인조 밴드와 함께 엔딩 무대에 오른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리드 보컬이 “자, 놀 준비됐습니까? 우리가 마지막 무대입니다. 저기 뒤에 계신 분, 공연장 문 걸어 잠그세요. 이제부터 못 나갑니다. 자, 놀 준비됐습니까?”라고 외친다.

    인터뷰가 끝나자 밤에 봤던 가죽점퍼에 강렬했던 로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은 놀라움을 자아냈다. 또 수술복까지 입은 것을 보니 수술을 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인가 보다.

    글·사진= 김한근 기자 kh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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