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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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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 - 안도현

  • 기사입력 : 2019-04-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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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 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 시집『간절하게 철없이』중에서 >

    ☞ ‘공양’이란 ‘웃어른을 모시어 음식 이바지를 하거나’, ‘죽은 이의 영혼에게 음식, 꽃 따위를 바치는 일 또는 그 음식’, ‘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사전적 의미를 종합해보면 공양이란 ‘음식’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시에서 공양은 음식이 아니다. ‘산벌의 날갯짓 소리, 칡꽃 향기, 백도라지의 슬픈 미동, 소낙비, 매미 울음’이다. 음식이 아니지만 맛있게 잘 차려진 밥상이다. 이런 밥상을 받아먹는 외딴집과 벌레들과 새와 바람 그리고 물소리까지 건강해진다. 적막한 공간을 가득 메워주는 소리와 향기와 몸짓이 그 적막감을 한층 더 깊게 하지만 이런 공양이 있어 ‘적막강산’은 외롭지 않고 ‘만산홍록’이 된다. 비어 있으나 결코 비어 있지 않아 아름답다. 그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어지럽히지 않아 공양이 더 돋보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를 가만히 두었을 때 보호가 된다. 서로 얽혀 흐드러질 때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에 따라 쇠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연보호라는 미명 아래 오히려 파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일곱 근의 산벌 날갯짓 소리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고 칡꽃 향기 육십 평을 누릴 수 있다.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을 가질 수 있고 매미 울음 서른 되를 맛볼 수 있다.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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