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4일 (화)
전체메뉴

(772) 형제지기(兄弟知己)- 형제이면서 마음을 알아주는 관계

  • 기사입력 : 2019-04-16 07:00:00
  •   
  • 메인이미지


    역사상 학문이나 덕행 면에서 동시대 나란히 이름을 날린 사람이 드물게 간혹 있다.

    중국 서진(西晉)시대의 육기(陸機)와 육운(陸雲) 형제, 송나라의 정호(程顥)와 정이 형제,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형제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중기의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형제, 온계(溫溪) 이해(李瀣)와 퇴계(退溪) 이황(李滉) 형제,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과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형제,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과 갈암 이현일(李玄逸) 형제,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과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 형제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 여럿 형제가 이름난 사람이 많이 있다. 동강(東岡) 김우옹 4형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5형제,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8형제 등도 다 형제가 이름난 인물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온계(溫溪) 퇴계(退溪) 양 선생은, 다섯 살 차이인데, 둘 다 진사를 거쳐 문과에 급제해 16년 가까이 같은 조정에서 벼슬을 했다.

    퇴계가 48세 때 단양(丹陽)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형님인 온계가 충청도 관찰사가 돼 부임하자, 형제가 고과(考課)를 할 수 있는 관계에 있지 못하도록 하는 나라의 규정에 따라, 퇴계가 경상도 풍기(豊基) 군수로 옮겨간 적이 있었다.

    온계와 퇴계 형제는 관직에 있는 동안 자주 만날 수 없자, 시를 주고받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심회를 이야기했고, 학문을 토론했고, 어떤 일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송(宋)나라 정자(程子) 형제에 퇴계 형제를 비유하기도 하였고, ‘옥곤금우(玉昆金友)’라는 말로도 표현했다. 옥 같은 형님에 금 같은 우애 있는 아우란 뜻인데, 원래는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왕전(王銓)과 왕석(王錫) 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비유하던 말이다. ‘금우옥온(金友玉昆)’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온계 퇴계 형제는 뜻이 같고 추구하는 도(道)가 합치되는 형제로서, 을사사화(乙巳士禍) 이후 권력을 잡은 간신들이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조정을 떠나 고향에 돌아가 조용히 학문 연구하며 지내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이뤄지기 전인 1550년 퇴계가 50세 되던 해, 온계는 간신 이기 등에게 몰려 고문 끝에 귀양가다가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우 퇴계의 슬픔과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비문을 지어 형님의 일생을 정리해 의미를 부여했다. 온계가 천수를 누렸다면 더 큰 학문을 이루었을 것이다. 퇴계는 더욱더 벼슬에 뜻이 없어 조정을 멀리하고 참된 학문 연구에 정진했다.

    *兄 : 맏 형.*弟 : 아우 제.

    *知 : 알 지. *己 : 몸 기. 자기 기.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