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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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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아이들 위한 거장의 첼로 선율

통영국제음악재단, 욕지도서 ‘스쿨콘서트’
세계적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동참
열악한 무대에도 50분간 꽉 찬 감동 선사

  • 기사입력 : 2019-04-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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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통영 욕지도에서 열린 스쿨콘서트에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딸 피아니스트 릴리 마이스키와 함께 연주를 하고 있다./통영국제음악재단/


    지난 5일 통영의 섬마을 욕지도에는 꿈을 담은 클래식 선율이 넘실거렸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은 이날 오전 11시 욕지중학교 강당에서 2019 상반기 ‘스쿨콘서트’를 열었다. 재단 교육사업인 스쿨콘서트는 5년 전부터 기획한 것으로 학교 수업시간에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플로리안 리임 재단 대표는 “교육적인 효과가 커 다른 음악가들을 초청해 찾아가는 연주회를 더 늘릴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1)가 동참했다. 국내에서는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미샤는 라트비아에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적 연유로 소비에트 연방 수용소에 2년간 감금되며 굴곡진 청년기를 보냈다. 이 아픔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그는 특유의 서정성과 생명력을 갖춰 첼로계의 ‘음유시인’이라 불린다.

    2019 통영국제음악제 리사이틀을 위해 한려수도를 찾은 미샤는 섬마을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첼로를 짊어지고 딸인 피아니스트 릴리 마이스키(32)와 행정선에 올랐다. 그는 연주에 앞서 “백발성성한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나는 어린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린이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건 언제라도 환영이다”고 소감을 말했다. 1시간가량 바닷길을 건너 욕지도에 도착한 미샤는 전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친 데다 감기 기운이 있어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지만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밝은 미소를 건네며 거장의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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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딸 릴리 마이스키가 욕지도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0여명이 살고 있는 욕지도에 학교는 원량초등학교와 욕지중학교뿐이다. 초등학생 36명, 중학생 10명, 선생님 29명 모두 중학교 강당에 모여 백발의 첼리스트를 반겼다. 이날 콘서트는 사실 여러모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릴리가 연주할 피아노가 마땅치 않아 인근 거제에서 피아노를 빌려와야 했고, 따로 대기실이 없어 무대 옆 간이 칸막이 안에서 준비를 마쳐야 했다.

    욕지도에서 클래식 공연이 열린 것은 2011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 이후 처음이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역시 8년 만의 연주회를 만끽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공정숙(52) 욕지중 음악교사는 클래식이 생소한 아이들에게 연주 레퍼토리를 미리 들려주고 공연 에티켓을 알려줬다.

    객석과 1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무대에 오른 미샤는 “오늘 공연이 아이들에게 햇빛처럼 따뜻하게 스며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흐의 아디지오와 아리오소,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브람스 첼로소나타 2번 등을 연주했다. 첼로 한 대, 피아노 한 대뿐인 단출한 공연이었지만 여느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꽉 찬 감동을 선사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생소한 듯 멀뚱거렸지만 벨라 바르톡의 루마니아 민속 무곡과 차이콥스키 사계 ‘가을’을 들을 땐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는 등 진지한 태도로 백발 거장의 무대를 즐겼다. 50분의 콘서트가 끝나자 객석 곳곳서 기립박수와 ‘브라보’ 찬사가 쏟아졌다. 욕지중 1학년 권예진 학생은 “눈앞에서 연주와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감동이 훨씬 더했다”고 말했다. 월량초 3학년 박지민 학생은 “미샤 할아버지와 사진도 찍었다”며 “매일매일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미샤는 공연 후 “위대한 음악과 예술은 감성과 지성을 발달하게 도와준다”며 “어린 친구들에게는 음악을 이해하도록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섬마을 아이들에게 이날은 욕지중학교 교훈 ‘머리엔 새로움이 가슴엔 따뜻함이’처럼 새롭고 따뜻한 배움이 움튼 하루였다.

    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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