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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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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55) 제24화 마법의 돌 55

“신여성들인가 봐요”

  • 기사입력 : 2019-04-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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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완전히 벚꽃의 나라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벚꽃이 활짝 피고 사람들이 벚꽃놀이를 즐겼다. 온천에도 가고 백화점에서 쇼핑도 했다. 조선도 양복을 입은 남자들과 양장을 한 여자들이 많았으나 일본은 양장을 한 여자들이 더 많았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많지 않네요.”

    류순영이 여자들의 옷차림을 살피면서 말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더 빨리 변하고 있소.”

    “신여성들인가 봐요.”

    일본 여자들 틈에 조선 여자들도 있었다. 1920년대에 신여성 바람이 불었다. 여자들이 시나 소설을 쓰고,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했다.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봉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던 남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혼을 하는 여자들이 많았고 이 남자 저 남자 전전하면서 자유연애를 구가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시와 소설을 쓰면 지식인으로 대접받았다. 커피를 마시거나 카바레에서 춤을 추고 문학과 사상을 이야기했다.

    수많은 신여성들이 있지만 많은 화제를 낳은 사람이 일엽스님이다.

    김일엽은 본명이 김원주로 개신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가 죽는 바람에 외할머니의 배려로 이화학당을 졸업했다.

    그녀는 미국유학을 마치고 연희전문 교수로 있는 이노익과 결혼했다. 그녀가 바라던 결혼이 아니어서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았다.

    이노익은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었다. 김일엽은 그러한 남편을 경멸한 것 같았다.

    김일엽은 이노익의 원조로 일본 유학을 하게 되어 도쿄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신여성 나혜석을 만나고 춘원 이광수와 허영숙과도 만났다.

    이광수는 그녀에게 신여성이 되라는 뜻으로 일본 신여성 히구치 이치요(口一葉)의 이름을 따서 일엽으로 필명을 지어주었다.

    김일엽은 일본에서 유학생인 시인 임장화를 만나 동거하기도 했다. 이노익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한 김일엽은 <신여자>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급진적인 신여성이 되었다.

    자유연애를 구가하면서 신체장애가 있던 남편과 이혼하고 문필 활동을 했다. 이어 일본으로 건너 가 일본 은행가의 아들 오다 세이조와 연애를 하여 임신했으나 집안의 허락을 받지 못해 혼자 아들을 낳았다.

    김일엽은 아내가 있는 임장화와 동거를 하는 등 화제를 일으켰다.

    이혼한 뒤에는 여러 남자와 동거를 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정조론에 대해서 반박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0년 동안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으나 김일엽은 그러한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연히 수덕사의 만공선사를 만나 승려가 되었다.

    이때 나혜석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삭발을 하고 비구니가 되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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