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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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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평범이 특별한 세상- 나순용(수필가)

  • 기사입력 : 2019-03-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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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고 씌어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싶어 한다. 색다른 점이 없다는 것은 시류에 크게 거스르지 않고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부모 세대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는 넉넉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월세에서 전세로, 또 작지만 내 집을 마련하며 삶의 보금자리를 꾸려왔다.

    자식이 성장해 직장에 들어간 뒤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만들도록 힘껏 받쳐줬다. 또 그 자식이 낳은 자식(손자)을 살가워하며 소소한 즐거움에 참으로 행복해했다.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고 누구나 그렇게 살았다. 물이 흐르는 대로 비바람 치는 대로 묵묵히 삶을 살아낸 것이다.

    올해 들어 그렇게도 고대하던 소득 3만달러 시대가 열렸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안 먹고 안 입고 부르튼 손발과 굽어진 허리 위에 새겨진 숫자가 아닌가. 베이비붐 세대들이 일벌레처럼 집과 일터를 오가며 땀과 눈물에 절인 수치이다. 소득 수준이 이쯤 되면 모두 휘파람을 불 것 같은 환상을 가졌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실상은 온갖 상처들이 켜켜이 쌓여 어떤 처방으로 치유해야 할지 걱정이 하늘에 닿을 지경이다.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직장을 찾아 애면글면한다. 지식과 정보는 넘쳐흐르는데 생산적인 일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소위 스펙을 탑처럼 높이 쌓았지만 어연번듯하게 쓸 곳을 찾지 못한다. 안정된 곳에서 일정한 급료를 받고 일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자식들은 취업하더라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신혼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길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많지만 평범한 신혼부부들이 들어갈 곳은 없다.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화려하고 멋진 결혼식 장면과 잘 꾸며진 신혼집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상대적 박탈감이 결혼을 더 미루게 한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늘어만 간다.

    또 결혼한 부부라도 대부분 두 사람이 경제활동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결혼하여 임신한 여성의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출산휴가가 곧 퇴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경제활동이 없는 출산과 육아가 시작되는 것이다. 육아와 교육비의 부담에 선택의 폭은 좁고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한 것이다. 최근에는 출산장려 정책으로 출산 후 복귀가 가능한 직장이 늘어나기는 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육아의 부담은 무엇보다 더 크다. 내 자녀를 마음 놓고 키우지 못할 바에야 낳지 않겠다는 의식의 뿌리를 빨리 찾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한 노력이 기쁨과 뿌듯함으로 채워져야 할 텐데, 오히려 그 고통의 깊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인구절벽이라는 국가적 재앙에 이르게 된 주된 원인은 여기에 있다.

    사실 지금의 20, 30대는 부모 세대에 비해 물질적으로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부모들이 ‘결핍’을 디딤돌로 일어섰듯, 자식들도 ‘풍요 속의 빈곤’을 잘 극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문화적 풍요와 비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지금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프리지아 향기 날리며 직장 따라 떠나는 자식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것. 몇 년 열심히 일하고 사랑스러운 연인과 결혼을 하는 것. 그러다 자녀를 낳고 뒤치다꺼리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 이런 삶이 그리도 특별한 것일까. 지금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이를 해결할 마중물은 어디에 있는가.

    나순용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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