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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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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미국 워싱턴D.C

봄과의 밀당, 벚꽃엔딩은 이곳에서…
1912년 일본이 우호관계 위해 벚나무 기증
봄 되면 벚꽃축제로 포토맥 강변 장관 연출

  • 기사입력 : 2019-03-2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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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회사 앞 주차장에 목련이 활짝 피었다. SNS에는 온통 각 지역 꽃 축제 이야기다. 질 수 없어 나도 이번 주말 근교로 꽃구경을 떠나볼까 계획 중이다. 꽃놀이 여행은 그 어떤 테마의 여행보다 타이밍과 날씨가 중요하기에 ‘꽃’을 보자고 멀리, 특히 해외로 떠나기에는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꽃이 피는 이 계절에 꼭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 바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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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축제(Cherry Blossom Festival)= 매년 이맘때가 되면 워싱턴D.C.의 봄은 벚꽃과 함께 활짝 피어난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심겨진 벚나무 가지가지마다 벚꽃뭉치가 마치 열매처럼 주렁주렁 풍성하게 매달려 장관을 연출한다. 이 때 봄바람이 살랑하고 불면 따뜻한 벚꽃 눈이 흩날린다. 더없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이다. 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이뤄지는 버스킹 공연, 불꽃놀이, 퍼레이드, 다채로운 국적의 요리들을 판매하는 푸드트럭까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또한 워싱턴 모뉴먼트, 링컨 메모리얼 등 워싱턴D.C.를 대표하는 건축물들과도 동선이 겹쳐 함께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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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워싱턴D.C. 벚꽃축제. 포토맥 강변을 따라 심겨진 벚나무 가지가지마다 벚꽃뭉치가 마치 열매처럼 주렁주렁 풍성하게 매달려 장관을 연출한다.

    미국에서 열리는 벚꽃축제 중 가장 큰 규모인 이 벚꽃 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의 역사는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퍼스트 레이디 헬렌 태프트 여사는 그보다 앞선 1907년에 일본을 방문했다가 벚꽃의 화사한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이후 태프트가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시 일본 도쿄 시장은 미국과 일본의 우호관계를 위하여 3000그루의 벚나무를 기증했고 헬렌 태프트 여사는 워싱턴D.C.의 포토맥 강변에 벚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의 아픈 역사의 시작인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등장하는 바로 그 태프트다. 일본 총리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 간의 밀약으로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하기로 한다. 말하자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미국과 우호관계를 다지면서 벚꽃이 ‘외교사절’로 워싱턴D.C.에 보내진 것이다.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낭만 뒤 약간의 씁쓸함이 남는다. 아픈 과거지만 그마저도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역사의 일부다. 꽃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아름다운 풍경 속 낭만을 만끽하고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자.

    ▲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워싱턴D.C.는 의외로 관광객들에게 친절한 도시다. 철저한 도시계획 하에 설계된 도시이기 때문에 모든 거리가 격자 모양으로 반듯하고 정확한 거리명이 붙어 있어 대표 랜드마크의 방향을 파악하고 지도만 조금 볼 줄 알면 어디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그래서 걸어서 여행하기도 참 좋은 도시다. 워싱턴D.C. 하면 대부분 백악관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백악관이 갖는 상징성은 인정하지만 시가지를 걸으며 여행할 때 백악관은 그다지 큰 도움이 안 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랜드마크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워싱턴 모뉴먼트다. 워싱턴D.C.에는 건물 고도 제한법이 있어 어느 건물도 국회의사당보다 높게 짓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워싱턴 모뉴먼트는 유일한 예외이다. 워싱턴D.C.에서 가장 높이(170m) 우뚝 솟아 있는 이 기념탑에 나는 연필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1800년대 후반에 지어졌지만 반듯하게 커팅된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쌓아올려 그 모습이 매우 세련되고 시크하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하단과 상단의 돌 색깔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기념탑 완공까지 장장 37년의 세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남북전쟁과 자금부족 때문에 공사가 여러 번 중단돼 상단부와 하단부에 사용된 돌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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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뉴먼트 기념탑서 바라본 워싱턴 전경.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망대에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백악관, 남쪽으로는 포토맥 강 너머의 펜타곤, 동쪽으로는 국회의사당, 서쪽에는 링컨 메모리얼이 보인다. 단, 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면 매일 아침 선착순으로 배부되는 무료 티켓을 확보해야 한다. 연중, 특히 봄에는 많은 관람객이 몰리기 때문에 전망대에 오르고자 한다면 아침 일찍 모뉴먼트 바로 옆에 있는 사무실에 들러 티켓을 받은 뒤 벚꽃 구경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 전망대에 오르는 동선을 추천한다.

    ▲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 워싱턴D.C.가 여행하기 좋은 도시인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대중교통이다. 지하철과 버스는 물론 공영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어 어디든 닿기 쉽다. 게다가 경사나 언덕이 없는 평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걷기도 좋다. 모뉴먼트에서 나와서 자전거를 대여하고 국회의사당 방향을 향해 조금 달렸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향해서.

    스미소니언 재단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James Smithson)의 기부금으로 설립된 박물관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국인 과학자는 미국에 방문한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그는 조카에게 자신이 죽으면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자신의 이름을 딴 교육재단을 설립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도 모두 영국인이고 미국에 특별한 연고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유언이 실현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가 한 번도 방문해 보지 않은 워싱턴D.C.에 교육재단을 설립하라고 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참 고마운 일이다. 그의 의지 덕분에 미국인들은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국립자연사박물관부터 미술관, 조각공원, 도서관, 동물원, 미국역사박물관, 인디언문화박물관, 흑인문화박물관, 항공우주박물관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으니 취향대로 골라 방문하는 재미가 있다. 스미소니언 재단 소속 시설은 아니지만 국립미술관도 이곳에 있어 둘러보았다. 박물관 하나하나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소장품의 수준도 매우 높다. 게다가 무료다. 현재 이 박물관들은 미국 연방정부가 관리하고 있으니 사실상 국립박물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는 미술사를 부전공할 만큼 미술에 관심이 많고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미술관들과 조각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램브란트, 루벤스, 고야 등 16~18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부터 반 고흐, 모네, 마네, 쇠라 등 인상파 화가들의 컬렉션 그리고 피카소, 마티스, 미로, 폴록의 작품들까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거장들의 작품들을 직접 보니 남다른 감동이 몰려왔다. 흔히 회화 작품은 평면 위의 그림이기 때문에 2차원의 세계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쇄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덧칠한 물감이 주는 입체감, 적절한 조명 아래에서 더 멋지게 빛을 발하는 색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디테일들, 붓질마다 담겨 있는 작가의 감정들은 실제 그림 앞에서 질감까지 느껴가며 감상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걸려 있는 공간의 분위기도 감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작품이라도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있다면 그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다지도 멋진 건축 공간에서 이토록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음미할 수 있어 너무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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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립미술관.

    미술관이 기대를 충분히 채워준 곳이었다면 항공우주박물관은 의외로 너무 재미있어서 없던 흥미까지 북돋워 준 곳이었다. 그야말로 미국의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폴로 11호와 월석이 ‘우리는 달에 갔었다!’를 외치고 있었다. 이외에도 인류 최초의 항공기인 라이트형제의 동력비행기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비행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뮤지엄숍에서는 실제 우주인들이 먹는 식사도 먹어볼 수 있다. 우주인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맛보았다. 관람이 끝나면 바로 편의점으로 가서 진짜 아이스크림을 사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가보지는 못했지만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근처에 항공우주박물관의 별관 격인 우드바-하지 센터(Udvar-Hazy Center)에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등 미처 본관에 전시하지 못한 비행기와 전투기, 우주선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함께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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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항공우주박물관.

    100년 전 심은 벚나무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주선 이야기까지 왔다. 바로 이것이 워싱턴D.C.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세기부터 그리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초강대국으로서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는 미국이다. 그 미국 정치와 외교의 중심으로 기능한 워싱턴D.C.에는 지난 역사 속에서 미국이 가졌던 압도적인 존재감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동시에 우주방위사령부까지 창설해가며 앞으로도 그 위풍당당함을 유지해 나가겠다는 미국의 확고한 의지도 함께 이 도시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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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나

    △1988년 부산 출생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치학 전공

    △경남메세나협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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