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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이주언(시인)

  • 기사입력 : 2019-03-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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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이 커서 타지로 떠난 후 우리 부부는 십수 년을 단둘이 살았다. 처음엔 어색했다. 신혼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이게 웬 유사 신혼인가 싶어 반갑지도 않았고, 집이 텅 빈 듯 허전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둘만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애들이 와서 좀 오래 있으면 슬슬 불편감이 일기도 한다. 식사 메뉴가 신경 쓰이고 나의 스케줄에도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또, 젊었을 때는 깐깐한 성향인 남편의 구속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이 양반 없으면 혼밥, 혼잠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크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소설은 사라진 희귀 모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소수민족에 대한 기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사람이 뉴욕으로 가게 됐고, 둘은 자기 민족의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그런데 사소한 말다툼 끝에 서로 의절하였고 그로 인해 그들의 희귀 모국어도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시선은 두 사람의 소통과 의절의 지점에 잠시 머물렀다. 누구보다 잘 통했을 사람끼리 왜 그랬을까? 고독의 크기를 능가할 만큼 자존심 상한 일이 있었을까? 소설의 ‘희귀 모국어로 소통하기’라는 말이 내게는 ‘부부지간 소통하기’라는 말로 와 닿았다.

    결혼 후부터 부부의 소통에는 그들만의 체계, 의미, 뉘앙스 등이 생겨난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이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소통의 체계와 의미는 더욱 확장되고 깊어질 것이다. 그래서 남의 부부싸움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말이 생긴 게 아닐까. 알 수 없는, 오묘한 뭔가가 부부 사이에 있다는 의미다. 때론 소통 대신 증오나 원망의 가림막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도 있다. 그렇게 살다 애들이 독립하면 단둘이 살게 되는데, 이런 삶이야말로 ‘오직 두 사람’ 아니겠는가?

    그동안 부부로 살면서 부딪치고 깨지며 서로에게 몽돌이 된 것 같다. 물론 몽돌도 가끔 부딪치면서 소리가 난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둘만의 희귀어로 소통하는 ‘오직 두 사람’이 된 느낌이다.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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