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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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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44) 제24화 마법의 돌 44

“안돼요. 빨리 말해요”

  • 기사입력 : 2019-03-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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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은 빙그레 웃었다. 류순영의 말은 옳다. 남자들이 기생집에 출입하는 것을 여자들은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요정에 출입하지 않을 수 없고, 요정을 출입하면서 기생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왜 대답을 안 해요?”

    류순영이 이재영을 다그쳤다. 새침한 표정이 예뻤다. 종가집 며느리인데 파마머리를 하여 신여성처럼 보였다.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좋겠소?”

    “그럼요. 거짓말이래도 기생집에 가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아니 거짓말이 뭐가 좋소?”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하면 좋은 거예요. 여자들은 모두 남편이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걸 좋아해요.”

    류순영이 소녀처럼 말했다. 전에 없이 애교까지 부리고 있다. 남편과의 여행인 탓인지 들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진실보다 좋은 거요?”

    “한 번 내 귀에 속삭여봐요.”

    “허허.”

    이재영이 멋쩍게 웃었다. 대구에서 걸을 때도 손을 잡은 일이 없고,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한 일이 없다. 양반이 아닌가. 내외간을 분명히 지켜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웠고 실천해 왔다.

    “얘기 안 할래요?”

    류순영이 다시 눈을 흘겼다.

    “남자가 쑥스럽게 어떻게 여자 귀에 대고 말을 하겠소?”

    “그러니까 내 귀에 속삭이라는 거죠. 당신이 그 말만 속삭이면 평생 잘해 줄게요.”

    “내가 경성 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 곳도 구경시켜 줄 테니 그 말은 한 걸로 합시다.”

    “안돼요. 빨리 말해요.”

    “허허.”

    이재영은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력 4월이고 음력 3월이다. 타락한 시골마을과 산야에 벚꽃이며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자요. 귀를 가까이 가져다댔으니 속삭여봐요.”

    류순영이 자신의 귀를 이재영의 입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뭐라고 속삭이라는 거요?”

    “순영아, 사랑해.”

    “허허.”

    “아니면 여보 사랑해.”

    류순영이 깔깔대고 웃었다. 이재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까지 류순영에게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안길 듯이 바짝 다가와서 귀를 들이대는 류순영의 교태에 얼굴이 붉어졌다.

    글:이수광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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