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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3·15혁명’ 59주년- 김진호(정치부 서울취재본부 부장)

  • 기사입력 : 2019-03-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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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5’는 꽃소식과 함께 온다. 이미 마산의 어느 양지바른 곳에는 개나리가 강한 생명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세상을 향해 그 천진난만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고 해마다 ‘3·15’가 찾아오지만 오는 15일 제59주년을 맞는 감회는 남다르다.

    ▼‘3·15’가 의거(義擧)로 불린 것은 시민혁명이 30년 넘게 지난 1994년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여야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정치개혁법을 공포·서명하는 자리에서 자유당 정권에 항거하면서 80여명의 사상자를 낸 ‘3·15’ 34주년을 맞아 이를 의거로 명명했다. 김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5·16혁명’을 ‘5·16정변’으로 재규정하고, ‘4·19의거’를 ‘4·19혁명’으로 복위시킴과 동시에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역사의 뒤편에 숨죽여야 했던 ‘3·15’를 되살렸다.

    ▼‘3·15’가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50주년을 맞은 2010년이다.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마산 지역구 출신의 이주영, 안홍준 의원은 2009년 11월 국회에서 ‘3·15의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국가기념일 제정의 당위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고, 3·15의거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모태가 된 그들의 값진 희생에 보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3·15’는 50년 만에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효시로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

    ▼내년이면 60주년을 맞는 ‘3·15’는 아직도 저평가돼 있다. ‘3·15’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 ‘3·15’는 ‘4·19’로 뜨겁게 타올랐고, 부마항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역사적 위상과 법률적 지위는 여전히 ‘4·19’에 가려져 있다. ‘3·15’는 3개월여에 걸친 마산시민들의 피의 항쟁이자 전 국민의 단결이라는 점에서 ‘4·19’와 같은 혁명(革命)으로 불러야 한다. ‘3·15’를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진호 정치부 서울취재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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