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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의열단의 산실 밀양- 고비룡(밀양창녕본부장 부국장 대우)

  • 기사입력 : 2019-03-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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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은 일제 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투쟁을 벌인 애국지사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밀양에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 ‘해천’이 있다. 산업화 시대에 복개했다가 2015년 도심정비를 통해 생태하천으로 복원됐다. 해천 주변 반경 500m 이내에 살던 사람 가운데 독립운동으로 서훈을 받은 사람이 26명이다. 의열단 초기단원 10명 가운데 4명(김원봉, 윤세주, 김상윤, 한봉근)이 밀양출신이다.

    의열단은 일제 강점기인 1919년 11월 9일 중국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독립운동단체로 조국 독립이라는 정의로운 일에는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약산 김원봉이 단장을 맡았으며, 중국 상하이를 거점 삼아 무력항쟁으로 일본 제국의 식민통치에 대항했다. 국내외 일제 관공서 파괴, 고위 관리를 비롯한 요인 암살 등이 주요 투쟁활동이었다.

    김원봉과 윤세주는 죽마고우였다. 2살 차이지만 어릴적부터 해천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함께 자란 사이다. 김원봉이 먼저 중국으로 갔고 윤세주가 독립운동을 위해 뒤따라 중국으로 향했다.

    밀양시는 독립운동 정신 계승을 위해 해천과 도로 곳곳에 그 이름을 새겼다. ‘약산로(김원봉)’, ‘석정로(윤세주)’, ‘백민로(황상규)’가 그것이다.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은 밀양 출신 서훈자는 79명에 이른다. 이 밖에도 증빙자료가 부족해 인정받지 못한 사람을 포함하면 밀양의 독립운동가는 100여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

    1919년 3월 13일 영남지역에서 큰 규모의 독립만세운동이 밀양 장날을 맞아 열렸고 윤세주는 이 밀양 3·13 만세운동을 주동했다. 수천명이 모인 밀양장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윤세주의 당시 나이는 18살이었다.

    밀양시는 올해도 3·13 밀양만세운동을 재현한다. 학생, 시민, 기관단체장과 국가유공자 유족 등 2000여명이 참여해 시가행진을 함께하면서 만세운동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와 함께 밀양시는 3·1일 운동 100주년을 맞아 3월 1일 오후 7시 30분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항일 독립군들의 군가로 불려진 ‘독립군아리랑’을 뮤지컬로 공연했다. 이번 작품은 총 4막으로 구성되며 제1막 약산과 석정의 어린 시절과 3·13만세운동, 제2막 의열단의 활약상과 김구 선생과의 만남, 제3막 박차정과의 만남과 윤세주와의 이별, 제4막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온 약산의 비통함과 고뇌를 표현했다.

    해천의 죽마고우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펼친 굽히지 않는 의열정신은 세월이 흘러도 잊힐 수 없는 우리들의 소중한 유산으로서, 이 정신을 더욱 기리는 것이 우리시대의 시대정신이 아닌가 느껴진다.

    고비룡 (밀양창녕본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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