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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이현근 (사회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9-02-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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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잘 났으면 뭘 그렇게 크게 잘 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니 내가 제일 바보스럽게 살았는지도 몰라요.”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며 모든 이의 ‘밥’이 되고자 했던 우리 시대의 양심,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추모사진전과 심포지엄, 기념음악회가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성당과 생가에 이어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대구 대교구 안동천주교회 주임신부가 됐으며, 1966년에는 마산교구가 처음 생기면서 첫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다. 1968년에는 제12대 서울 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고,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됐다. 1998년 서울 대교구장을 은퇴하고, 2009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김 추기경은 옹기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 항상 낮은 곳에서 사회적 약자를 찾아다녔고 그들의 편에 섰다. 1970, 1980년대 서슬 푸르던 독재와 맞섰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북돋워주며 성직자로서, 사회의 어른으로서 큰 힘이 됐다. 김 추기경은 1987년 6월 항쟁 때 명동성당으로 피해 온 300여명의 대학생을 경찰이 연행하려 하자 “학생들을 연행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고 맞서기도 했다. 마산과도 인연이 깊어 첫 마산교구장으로 오면서 평소에도 마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면 과거의 일이 되는 시대에 돌아가신 지 10년이나 되는 김수환 추기경이 다시 회자가 되는 것은 그가 우리 시대의 양심이자 어른이었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은 그만한 어른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 계층, 지역, 빈부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중재하거나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사회의 큰 어른은 부재중이다. 바보로 자처하며 잘난 체하지 않았지만 기둥이 되어준 김수환 추기경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가 새삼스러운 날이다.

    이현근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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