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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착한 분노냐 여론 재판이냐-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 기사입력 : 2019-02-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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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국민청원은 현대판 신문고다. 각종 이슈에 즉각 반응하는 민심 풍향계다. 30일간 20만명 이상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가 마감 30일 이내에 답하도록 했다. 참여는 폭발적이다. 하루 평균 11만명이 동참했다. 2017년 8월부터 시작돼 청원 47만 건, 동의 5600만 건을 기록했다. 청와대는 총 73건에 답했다. 문재인 정부 ‘히트상품’으로 자리했다.

    최근 단연 눈길을 끈 청원은 김경수 경남도지사 재판에 관련된 판사 전원의 사퇴 요구다. 불과 하루 만에 20만명의 추천을 받는 엄청난 응집력을 과시했다. 12일 오전 현재 26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달 30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성창호 부장판사)는 김 지사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2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지사는 판결 직후 변호인을 통해 “양승태 재판부와 연관된 재판부라는 점이 재판 결과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는데 현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가뜩이나 재판 결과를 탐탁잖게 보던 지지층 가슴에 불을 댕겼다.

    지난해 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그 판사를 파면해야 한다는 청원은 사흘 만에 2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청와대 답변은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청와대가 재판에 관여하거나 판사를 징계할 권한은 없다”는 요지였다.

    애초 제도 도입 때 답변이 불가한 사항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정부 권한 밖인 사법부나 국회 관련 청원에는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거나 답변 권한이 없다며 마무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청와대의 원론적 답변에 비난이 들끓고 국민청원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지사 판결과 관련한 청원도 이 수준에서 마무리될 공산이 커 보인다.

    청와대는 재판 이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침묵 배경에는 김 지사의 정치적 무게와 파급력을 고려한 때문이란 게 대체적 분석이다. 김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최측근이다. 청와대가 재판 결과에 대해 메시지를 던질 경우 사법권 간섭이라는 역풍과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노영민 비서실장을 통해 김 지사 법정구속 소식을 보고받은 문 대통령의 반응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국민청원 순기능 이면에는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온상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특히 정치 사안에 대해서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까지 등장하며 울분을 토하는 장으로 변질했다.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지지층 간 세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 지사를 구속한 재판부를 지지한다거나, 도지사직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디지털 세상을 통해 결집한 집단지성은 세상을 바꾸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민심은 갈리고 반목과 갈등의 기폭제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좌파들의 놀이터’라며 진영 싸움으로 몰아가는 발언까지 나왔다.

    착한 분노냐, 여론 재판이냐. 청와대 국민청원이 갈림길에 섰다.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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