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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진주 소목장인 엘레강스 최

뚝딱뚝딱 나무 다루며 차근차근 기술 나눠요

  • 기사입력 : 2019-02-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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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혁신도시에서 인근 금산면 송백리 방면으로 10분가량 운전해서 들어가자 도로 옆에 엘레강스 최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우리 주변에서 평소 접하기 힘든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곳은 목(木)공방이자 이를 운영하는 주인의 이름(예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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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목(小木) 장인인 엘레강스 최가 진주시 금산면 자신의 작업실에서 원목 탁자를 만들기 위해 밝은 표정으로 자질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목공방에 들어서자 길이 5m가 넘는 외국산 원목이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고 엘레강스 최(43)는 자를 가지고 먹물을 놓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달에 테이블 3~4개 정도를 주문받아 제작을 하는 그는 수공구를 직접 손에 들고 모든 과정에 자신의 정성을 쏟아넣는다. 제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제품과 작품의 차이는 1%다. 기계가 좋아져서 제품을 찍어낼 것인지,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 것인지를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수공구와 사람의 손이 들어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난해 10월 목공방을 연 그는 현재 소목 분야에 일하고 있지만 그동안 적지 않은 삶의 과정을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됐다. 경기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잠시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대목 일을, 대목에서 다시 전통분야 소목으로, 현재는 비전통 분야의 소목 장인이자 전국적인 유명 목공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 보통 사람들의 삶과 큰 차이가 없다는 그의 삶속으로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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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소목(小木)장인 엘레강스 최.

    ◆대기업 직원에서 대목 장인으로= 그는 경희대학교 졸업 후 2004년부터 자동차 대기업에서 2년간 근무하다 그만뒀다. 회사 분위기가 자신과 맞지 않아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퇴직 후 3주가량 지나면서 더 이상 놀 수가 없어 ‘남자라면 집을 한 번 지어봐야 한다’라는 꿈과 함께 건축분야를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전통한옥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한옥학교를 검색하다가 한 블로그에서 ‘한옥학교로 가지 말고 그 비용과 시간으로 연장을 사서 현장으로 바로 와라’는 글을 보고 곧바로 국내 유명 대목수(절이나 궁궐 등 큰 건물을 잘 짓는 목수) 아래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한옥 등을 짓는 대목 일에는 대부분 6~8명이 팀을 이루는데, 설계하고 대패로 깎고 끌로 파는 것, 톱으로 자르는 것, 자로 재는 것, 먹을 놓는 것 등의 작업이 있다. 일하는 등급을 보면 대패질(끌질), 톱질, 먹잡이 등의 순이며 7년 정도 걸려 먹잡이(먹을 놓는 사람)에 이른다.

    “처음 목수 일에 문외한인데다 사람들이 폐쇄적이어서 더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2~3개월 동안 아무도 말도 안 붙였습니다. 제가 이 분야에서는 드물게 대학 출신으로 며칠 하다가 그만두고 떠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3개월을 버티자 사수가 ‘한번 깎아 봐’라고 해서 목수 일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시작해 8년이 지났을 때 목수 중에 윗등급인 부편수 아래 먹잡이를 맡게 된다. 그는 목수 일을 하며 체계적인 기술을 전수받기보다는 스스로 터득하고 책보고 연구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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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소목(小木)장인 엘레강스 최.

    ◆경남과 인연을 맺다= 대목은 절 공사를 많이 해서 강원도, 하동 악양 등지를 주로 다녔다. 그러다 산청군 단성면에서 집을 짓게 됐는데, 공사가 3년간 잡혀 진주에 머물게 된다. 당시 진주는 처음이었지만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으면서 여름에 5일(한 달 25일 일하고 5일 휴무함)을 한꺼번에 쉴 때 거제로 여행을 갔다가 횡단보도에서 만난 여인에 반했는데 바로 지금의 아내다. 결혼 후 아이도 생기면서 전국을 다니며 하는 일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그는 2013년 결국 화성에서 공사를 앞두고 홀몸이 아닌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일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면서 미련 없이 대목 일을 그만둔다. 대신 원래 자라난 수도권이 아닌 아내의 고향과 가까운데다 교통이 번잡하지 않고 살기 편한 진주에 뿌리를 내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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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소목(小木)장인 엘레강스 최.

    ◆대목에서 소목으로= 대목 일을 그만둔 후 먹고살기 위해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 입시학원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학원 일을 하면서 다시 나무를 만지고 싶어져 이번에는 대목이 아닌 전통가구(장롱, 경대, 문갑, 함지박 등)를 제작하는 소목 공방에 등록을 한다. 그는 처음에는 회원으로 있다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스승으로부터 기술전수를 받는 제자로 수련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오전 일찍 가서 가구를 만들고 오후 4시가 되면 학원으로 출근하는 생활이 3년 정도 계속되다가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 결국 소목을 선택하게 된다. 학원 일은 수입은 더 많았지만 좋아하는 일,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목공 일에 전념하기로 한 것. 이렇게 해서 5년여 기술전수를 받다가 지난해 10월 현재의 목공방을 차리고 독립한다. 전통가구 분야가 경기에 민감하고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대중성이 있는 비전통 분야의 가구를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현재 가정용 테이블 등 각종 가구를 주문 제작하고 있다.

    ◆대목과 소목의 차이= 소목과 대목 모두 나무를 갖고 톱질, 대패질 등을 하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두 분야의 사람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단다. 스케일 면에서 소목이 더욱 세밀하다. 대목은 나무가 수축하면서 틈이 생기는 한 치(3.03㎝)의 오차도 인정하지 않지만 소목에선 100분의 1㎜까지 틈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연장도 대목의 경우 크고 굵직굵직하다면 소목의 경우 작고 세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소목 일을 하는 사람이 대목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는 대목 일을 하다가 소목 일을 하면서 어깨의 힘을 빼야 했는데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기술 전수도 대목의 경우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긴다’며 폐쇄적이어서 개인적으로 터득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소목의 경우 스승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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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소목(小木)장인 엘레강스 최.

    ◆교육 강사로 유명= 그는 나무와 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가입 회원만 27만명이 넘는 ‘우드워커’라는 카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 자신의 교육 공지를 올리곤 하는데 모집인원보다 신청자가 많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다.

    이 같은 인기는 그의 강의가 꼼꼼하고 깐깐하면서도 폭넓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패를 논하면 대패의 역사부터 원리, 분해, 숫돌의 거칠기와 밀도, 접착제 성분 등 목공 전반이 다뤄진다. 이를 위해 영어와 일어 등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 문헌들과 목공 관련 잡지 등을 통해 철저하게 이론을 마스터해 전달하고 있다. 강의는 서울, 제주 등 그를 찾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한다. 유료로도 하지만 어렵고 시간이 없는 사람을 위해 무료교육도 한다.

    명성에 비해 그가 교육을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년 반 전에 자신이 기술전수를 받았던 공방이 실력에 비해 알려지지 않아 무료교육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또 목공 기술이 특별한 것이 아닌데 대목의 세계에서 경험했던 폐쇄성을 극복하자는 의지도 작용했다. 강의는 1년에 네 번 정도를 하고 있고 한 번에 15시간씩 집중적으로 한다.

    그는 “내가 목공을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교육 분야에 더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앞으로 교육을 더욱 발전시키고 체계화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후배 목수나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목공에 대한 모든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을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명용 기자 my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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