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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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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15) 제24화 마법의 돌 ⑮

‘설마 또 해먹으려는 것인가?’

  • 기사입력 : 2019-01-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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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는 정신없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정식은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5공화국이 엊그제 수립된 것 같았는데 어느 새 임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6·10항쟁이 일어나고 6·29가 터져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줄었다.

    이재영의 병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어느 날부터 걸음이 느려지더니 이제는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었다. 별달리 병이 생긴 것은 아니었으나 퇴행성이라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밖에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부회장님.”

    이정식이 이재영의 병을 생각하고 있을 때 비서실의 임충수가 들어와서 허리를 숙였다.

    “무슨 일이오?”

    이정식이 임충수를 쳐다보았다.

    “경호실장님이 만나자고 하십니다.”

    “경호실장이?”

    이정식은 가슴이 철렁해졌다.

    “예. 오진암에서 뵈었으면 한다고 합니다.”

    “경호실장이라면 만나야지. 스케줄 있는 거 모두 취소해.”

    이정식은 가볍게 말을 했으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잘못 보일 수는 없다. 권력자들이 국제그룹을 분해시켰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그룹 회장들이 바짝 긴장해 있었다.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은 무서운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가들이 기업 회장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이정식은 경호실장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그룹 차원에서 명절 때가 되면 경호실장, 비서실장, 수석보좌관 등 인사를 빠짐없이 챙기고는 했다. 그것은 이재영 회장도 철저하게 했던 일이었다.

    “힘이 있는 자들이 100을 원하면 1000을 줘라. 그러면 누구든지 머리를 조아릴 거야.”

    이재영 회장은 돈으로 권력을 부리는 방법에 익숙했다. 이정식은 오진암에 이르자 안내를 받아 특실로 들어갔다.

    “핫핫핫! 어서 오시오. 바쁜 사람을 이렇게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특실에 앉아 있던 경호실장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아닙니다.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이정식은 경호실장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경호실장은 전형적인 군인이다. 체구가 다부지고 눈빛이 매서웠다.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자 취기가 올랐다.

    “부회장님, 세상이 참 빠르지 않습니까?”

    취기가 오른 경호실장이 이정식을 똑바로 응시했다.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음식을 날라왔다.

    “그렇지요.”

    “대통령께서 벌써 은퇴하실 때가 되었어요. 한참 일하실 나이인데….”

    경호실장이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이정식은 등줄기가 서늘해져 왔다.

    ‘설마 또 해먹으려는 것인가?’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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