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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종생기(終生記)- 이학수(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9-01-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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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 종생(終生)했다. 우리집에 온 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아내의 절대적 사랑으로, 가전제품 부동의 1위를 지킨 텔레비전이 지난주 수명을 다했다. 한 달 전쯤부터 조짐을 보였다. 특정 색상이 도드라지다가, 화면이 깨진 것처럼 나갔다. 그러다 어떤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우리 가족은 이별을 준비했다. 그래, 10년이면 갈 때가 됐다며.

    ▼TV 종생 이후 1주일. 평소 뉴스나 다큐멘터리 정도만 보는 나는 별 불편함이 없다. 휴대폰으로 뉴스는 얼마든지 볼 수 있기에. 휴대폰을 끼고 사는 아들도 별 불만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아내다. 드라마광이자 홈쇼핑을 즐기는 아내는 심각한 금단현상을 겪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아무 방해받지 않고 드라마를 섭렵하는 게 아내의 소확행이다. 습관적으로 깨어나 요새는 아들처럼 동영상 짤을 보거나 DMB앱으로 갈증을 해결한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TV를 ‘작은 거인’이라 했다. 그는 TV의 두드러진 힘에 주목했다. 모든 국민을 하나의 의식과정에 참가시키는 사례를 들었다. 이에 비하면 신문, 영화, 라디오는 소비자용의 단순한 규격품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중독되면 깊은 마비의 효과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라고 했다. TV를 보면서 시간을 허송하느니 앞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한때 TV중독을 우려하며 TV 안 보기 운동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1995년부터 ‘TV를 끄면 삶이 살아난다(Turn off TV-Turn on life)’는 구호 아래 ‘1년에 1주일 TV 끄기’ 캠페인을 벌였다. 우리나라도 2004년 ‘TV 안 보기 시민모임’이 출범했다. TV를 끄면 단절의 벽이 무너지고 대화가 살아난다. 이상은 소설 ‘종생기’에서 산호 채찍을 놓지 않고 자신을 다잡는다 했다. 종생이야말로 진정한 삶으로 가는 출구라고, 그는 종생을 유유히 즐겼다. 오늘도 아내는 TV를 사러 가자고 조른다.

    이학수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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