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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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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목계지덕(木鷄之德)- 나순용(수필가)

  • 기사입력 : 2019-01-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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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계’란 나무로 만든 닭이란 뜻이다. 나무로 만든 닭처럼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능력을 ‘목계지덕’이라 한다. 장자의 ‘달생’ 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주나라의 선왕이 투계를 좋아해 기성자란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투계로 만들기 위한 훈련을 맡겼다. 기성자는 당시 뛰어난 투계 사육사였는데, 맡긴 지 십 일이 지나고 나서 왕이 그에게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사육사는 대답한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해 아직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헛된 교만과 기운을 믿고 뽐내는 자세를 버리지 못했다는 대답이었다.

    다시 십 일이 지나 왕이 또 묻자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급함을 버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십 일이 지나 왕이 또 묻자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그 눈초리를 버려야 합니다.” 이 뜻은 상대방을 질시하는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십 일이 지나고 물으니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투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닭이든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

    장자의 고사에서 말하는 최고의 투계는 목계이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교만함을 버리고, 남의 소리와 위협에 쉽게 반응하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린 목계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지위나 권력을 가졌다고 그 힘을 행사하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많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얕은 냄비 바닥처럼 달았다 식었다 할 것이다. 나를 비롯해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더불어 살아가면서 최소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거칠고 가치 없는 말들을 수없이 쏟아내며 심성을 황폐화시킨다. 그 속에는 어떤 감동이나 책임감도 없이 제멋대로 휘둘러 대는 칼날이 돼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인격이란 한 사람의 품격이다. 인격자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바른 인격자가 절실한 오늘날의 세태가 아프다.

    노자는 ‘弱之勝强 柔之勝剛(약지승강 유지승강: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센 것을 이긴다’라고 했다. 어떤 싸움이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능하면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데 주위의 부추김에 수양버들이 된다.

    삶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질곡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정말 억울하고 가슴 칠 일이 셀 수나 있을 터인가. 그래도 ‘참은 뒤끝은 있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쉽게 목계가 되지 못한다. 마음속은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만치 비좁다. 집착과 교만이 똬리를 틀고 앉아 포용과 겸손을 막아서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최고의 목계가 타의에 의해 흔들릴 수는 있어도 뿌리째 뽑히지는 않아야 한다. 절대적인 가치를 바라보며 태연자약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목계지덕으로 진정한 인생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순용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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