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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국선변호인에 대한 단상- 조정현(변호사)

  • 기사입력 : 2019-0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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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몇 차례 특수절도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을 변론할 기회가 있었다. 특수절도범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흉기를 휴대하고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흉악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필자가 국선변론을 한 두 건의 특수절도는 그런 흉악범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우선 한 사건은 피고인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는데 직장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한국에서의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고물상에 있는 휴지통 등 가재도구 몇 개를 주워갔다가 고물상 주인의 신고로 검거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내용만 보면 그 피해액도 얼마 되지 않고 범죄 동기 역시 참작할 만하기에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불기소처분을 받기에도 넉넉한 사건이었으나, 단지 동료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고물상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특수절도’로 기소돼 형사재판에 회부됐던 것이다. 우리 형법에 의하면 특수절도를 범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어서 벌금형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선처를 받아봤자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 한 사건의 피고인은 트럭으로 폐지를 수집하는 지인으로부터 트럭을 운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운전과 폐지 수집을 도와주었는데, 실수로 구두가 든 택배 상자를 폐지로 오인해 트럭에 싣게 됐고, 피고인은 지인과 함께 위 택배 상자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특수절도’로 형사재판에 회부돼 1심에서 실형의 선고를 받았다. 필자는 피고인의 항소심에서 국선변호를 담당했는데 다행히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지인이 위 택배 상자를 가져갔다는 것이 밝혀져 실형을 면할 수 있었다.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사실 가끔은 국민의 세금으로 범죄자들을 위해 국선변호인까지 선임해 줘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위 두 사건의 피고인들을 생각하면 결코 국선변호인 제도가 세금 낭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범죄자에게도 변호인의 변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법체제의 통찰력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조정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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