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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가을운동회의 밤 줍기- 정성규(국민건강보험공단 창원중부지사장)

  • 기사입력 : 2019-0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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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내가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하나는, 새터민이 북한에서 생활할 때 겪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갖가지 이야기 중 배가 고파서 겪어야만 했던 상황들을 듣다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종종 겪은 경험과 비슷하기에 공감이 되면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하나둘씩 떠오르곤 한다.

    70년대 말 시골 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는 학생들은 물론 온 동네 사람들의 잔칫날이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공책이나 연필을 상품으로 받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렸고, 점심시간에는 선생님이 운동장에 뿌린 삶은 밤을 줍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나가곤 하였다.

    운동회가 끝난 뒤, 밤을 친구들보다 많이 가졌을 때는 고작 밤 몇 알에도 며칠간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집안 행사로 오랜만에 친인척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과일, 떡, 고기를 잔뜩 준비하였고 작년 가을에 주운 밤도 한 소쿠리 삶아 두었다. 푸짐한 양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였는데, 어린 조카들은 “뭐 맛있는 게 없어요?” 하고 음식들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과일도 있고, 떡도 있고 밤도 저렇게 많지 않니?” 하니 “우리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자”하고 조카들은 단체로 나가버렸다. 어디선가 “아직 배가 덜 고파 봐서…”라는 탄식이 들려왔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세대 간의 여건과 환경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변하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나조차도 나의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는 식성, 사고방식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절박한 배고픔을 겪어보지 않고 자란 젊은이들이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배고픈 현실을 짧지만 강렬하게 표현한 새터민이 쓴 단편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종자) 심을 것인가, 먹을 것인가, 봄이면 찾아오는 유혹’.

    정성규 (국민건강보험공단 창원중부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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