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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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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밥 한 끼- 강희정(편집부 차장대우)

  • 기사입력 : 2018-12-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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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물녘 굴뚝에서 붉게 타고 싶었던 불길이다/눈물로는 죽지 않는 하얀 바람/고봉 웃음꽃이다/쏜다, 한 끼에 목말라 애타게 곯아 있다면/오늘은 너에게 만개한 밥풀꽃이 되겠다/붉은 입술들 한 냄비에 다져 넣고/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단, 한 방에 죽여주는 것/아무 때나 언제나 총은 내가 쏠게/내 옆구리에 무기가 있든 없든 너를 공손하게 받들어 총,/배포 굵은 내가/빵,’(양현주 시 ‘밥 한번 먹자’)

    ▼신문이 오후에 나오던 석간 시절, 어느 직장과도 비슷했던 점심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언제나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과 함께한 점심은 먹는 것 이상으로 하루의 활력을 주는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조간신문으로 바뀐 후 업무시간이 변경되면서 동료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점심이 사라졌다. 밥이 주는 푸근함과 따뜻함은 물론 함께하는 정(情)을 느낄 수 없는, 배만 채우기 바쁜 혼밥족이 됐다.

    ▼혼자 끼니를 때우는 ‘혼밥’이 흔해졌다. 시간이 없어서,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불편하거나 싫어서,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고 싶어서 등등 이유는 많다. 하지만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이해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소셜 다이닝(마음 맞는 사람끼리 어울려 함께 식사를 즐기며 인간관계를 맺는 것) 문화도 결국 만나서 ‘밥 한번 먹자’가 계기가 됐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온정이 있고 생활 안에서 사람 냄새 나는 우리만의 정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공염불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인사치레가 됐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이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먹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그리운 때이다. 올해 함께하지 못한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새해엔 저 시인의 시구처럼 먼저 이렇게 말해보자. “밥 한번 먹자! 내가 쏠게.”

    강희정 편집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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