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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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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 차창룡

  • 기사입력 : 2018-12-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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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해지면 강해지는구나

    꽃도 버리고 이파리도 버리고 열매도

    버리고

    밥도 먹지 않고

    벌거숭이로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면

    바람이 날씬한 가지 사이를

    그냥 지나가는구나

    눈이 이불이어서

    남은 바람도 막아 주는구나

    머리는 땅에 처박고

    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동상에 걸린 채로

    햇살을 고드름으로 만드는

    저 확고부동하고 단순한 명상의 자세 앞에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

    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

    ☞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가진 것 다 날리고 돌아온 탕아처럼 직립의 습관 하나로 우두커니 서 있는 알몸의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굴참나무인가? 밤나무인가? 단풍나무인가? 돌배나무인가? 산수유나무인가? 생강나무인가? 이름이 흐릿해진 그 원시의 흐릿함을 좋아한다. 나도 흐릿해져서 저들과 한통속이 되고 싶다. 저들의 언어를 받아 적고 싶다. 그러나 나는 혹한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꺼운 외투를 껴입는다. 혹한을 알몸으로 맞서는 겨울나무! 이 도저한 아이러니를 이 시는 고통(‘밥도 먹지 않고/벌거숭이로’ ‘머리는 땅에 처박고/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동상에 걸린 채로’)을 자처하여 더 큰 고통에서 놓여나는 고행수행에 빗대어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며 구체성을 확보한 긍정의 미학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우리 겨울나무처럼 힘들고 서럽더라도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고’ 참아볼 일이다. 흐릿함의 몽상일랑 겨울날의 사치로 떨쳐버리고 어떤 혹한과 비바람이 닥쳐도 끄떡하지 않을 이름(꿈)을 일구어 볼 일이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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