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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나의 이름은 청춘] 여행자의 삶 시작한 임락규 씨

“죽음의 문턱서 다시 찾은 삶… 세상의 모든 땅 밟을 겁니다”

  • 기사입력 : 2018-12-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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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도, 명예도 하나도 부러운 것이 없어요. 남들 시선도 별 개의치 않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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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락규씨가 창원의 한 카페의 세계지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제2의 인생을 시작한 60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팔팔한 20대 청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어쩌면 너무 위선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그가 겪었던 일들을 들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20대 초반에 죽음을 마주했다 살아난 임락규(27) 씨의 말이다. 평범한 삶을 버리고, 자발적 백수와 여행자를 오가는 삶을 막 시작한 그를 만났다.

    ▲죽을 뻔했던 24살 이후, 여행으로 살다

    “이유 없이 체온이 42도까지 올랐어요, 출동한 구급대원도 체온계가 고장난 줄 알고 계속 재더라고요. 체온이 43도가 되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발끝부터 온몸이 돌처럼 뻣뻣하게 굳고 심정지가 왔고요. 그게 4년 전, 스물네 살 때네요.”

    그러니까 20대에 죽음을 경험한 사람의 삶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일만 하고 살아가는 건 부질없다. 내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체감했으니까 좋아하는 걸 하며 살기로 했다. 그에게는 세계의 땅을 모두 밟아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많은 땅을 밟아보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원래도 여행을 좋아했지만, 죽음을 경험한 뒤에는 더 간절해졌습니다.”

    여행자로 살기로 마음먹고 나서 처음으로 준비했던 배낭여행을 앞두고도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로 일순간 몸무게가 13㎏ 빠졌다. 수술한 직후인 2017년 2월 가까스로 출발한 스페인·포르투갈로의 첫 배낭여행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다녔다. 자신감을 얻은 두 번째 여행은 2018년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에 걸친 유럽여행. 다른 여행자가 보여준 터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사진을 보고 환불되지 않는 한국행 티켓을 버리고 터키로 가는 여정을 택해 그 길로 여행은 18일이 늘어났다.
    메인이미지임락규씨가 마그넷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든 것이 새롭고 다르고, 처음 느끼는 맛,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경험하는 것에서요.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여행을 다니면서 스스로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도 참 어색했는데 지금은 성격이 바뀌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게 되는 것 같아요.”
    메인이미지임락규씨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만든 ‘나의 첫 유럽여행’ 사진집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을 위한 자발적 백수

    경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평범한 회사를 다니며 결혼하는 삶을 택하리라 생각했던 락규씨이지만 여행으로 인해 궤도가 바뀌었다. 여행이 채워주는 것들이 너무나도 컸기에 남들과는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 여행이 계속돼야 했으므로 그의 시간은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하는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나뉘게 됐다. 두 시간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은 자발적 백수가 되는 길이 유일했다.

    “정규직에 취직하면 제 마음대로 여행을 갈 수 없으리라는 걸 아니까 대학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어요. 원할 때 그만둘 수 있어야 여행을 또 길게, 가고 싶은 대로 떠날 수 있으니까요. 주변에서 걱정하는 눈초리도 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돼서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아요.”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혹독하게 일했다. 오로지 여행자금으로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 3개, 쓰리잡을 뛰니 쉬는 날은 주말 중 하루 오전뿐, 그마저도 잠으로 채운다. 여행을 가서는 꼭 현지 음식과 맥주를 마시고, 권위 있는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받은 유명 식당도 가지만, 국내에서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끼니를 챙겨주는 음식점 홀서빙을 택했다. 여행을 많이 다녔으니 SNS 등으로 사진도 올리고, 여행기를 써서 작가를 해보는 건 어떠냐는 질문에 진정 여행자다운 답이 돌아왔다.

    “SNS를 하니 여행에 집중할 수가 없더라고요. 좋은 사진을 남기고는 싶지만 여행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어 사진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게 전부예요. 대신 매일의 기록을 블로그나 메모장에 적어두고 있어요. 작가나 전문 여행가로 나서기엔 워낙 저와 비교도 안 되게 많은 곳을 다닌 분들이 있어 저는 아직 여행가로 불리기에도 아주 부족해요. 열심히 다녀야죠,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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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락규씨의 크로아티아·스위스·터키 등 유럽여행 사진. /임락규/

    ▲세계에 깃발 꽂는 그날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불가리아, 터키, 일본, 홍콩, 태국까지 22개국. 3층짜리 미니 서랍장을 가득 채운 마그넷들이 그가 밟은 땅들을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때 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 크로아티아 유니폼을 입은 채 크로아티아 시민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어울려 다녔고, 스위스에서는 4박5일간 산봉우리들이 빚어낸 비현실적 절경에 감탄하고, 파리에서는 TV에서만 보던 에펠탑을 앞에 두고도 실감나지 않는 묘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을 가지 말고 여행을 다닐 걸’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하. 일단 가까운 목표는 30대 중반 안에 100개국을 돌고, 세계에서 유명한 그 나라 대표적인 축제를 다 둘러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내년에는 캐디를 해 돈을 모아서 6월에 남미일주를 계획하고 있어 스페인어 공부도 독학으로 해요.”

    여행을 위해 공부하고,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고, 여행을 위해 몸을 단련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올해 하반기를 강타했던 전설적 밴드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나온 ‘We will rock you’가 그의 주제가처럼 떠올랐다. 발을 힘차게 굴리며, 깃발을 들고 세계를 누비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청춘들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외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Waving your banner all over the place.(온 세상에 네 깃발을 흔들어 봐), We will we will rock you(위 윌 위 윌 ‘락규’ 우리가 너를 뒤흔들겠어)”?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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