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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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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멀디 먼 걸음- 강기명(경남도교육청 감사관)

  • 기사입력 : 2018-12-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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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새벽의 공기는 꽤 서늘해졌다.

    서늘한 새벽은 자동차로 출근하는 나에게는 낯설지만, 나의 아버지에게는 낯설지 않으셨으리라.

    젊으실 때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창원까지 매일 새벽에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셨다.

    아버지가 타셨던 버스 창문에는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손을 호호 불어 생긴 성에가 문득문득 생겼었겠지.

    자식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생의 걸음을 닦아놓기 위해, 아버지는 일 년 열두 달을 하루같이 십일 문의 작은 걸음으로 그 먼 거리를 오가셨을 것이다.

    찬바람 부는 추운 겨울, 어머니는 아버지가 오실 즈음에 계란밥을 해두셨다. 계란 껍데기 끝을 조금 깨부수어 계란 속을 조금 빼내고 그 안에 불린 쌀을 넣은 뒤, 시뻘건 연탄난로 위에 올려두는 것이다.

    아버지는 집에 오시면 매캐한 연탄 냄새와 연탄난로의 온기가 가득한 평상에서 호호 불어가며 난로 위 계란밥을 까서 드셨다.

    나는 아버지의 굳건한 뒷모습에 진 그림자 안에서 겨울의 찬바람과 여름의 땡볕을 피하고, 어머니의 따뜻한 쌀밥을 먹으며 자라왔다.

    그때는 아버지의 멀디 먼 걸음도, 어머니의 매캐한 계란밥도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의 아버지 나이보다 많아진 나의 주변엔 더 이상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매운 연탄 냄새도, 차가운 유리창의 성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과 지금은 너무도 달라져 있다. 사람들은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치며 얘기를 나누기보다 손가락으로 대화를 하고, 긴 하루 끝에 가족끼리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순간에도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가족을 생각하는 차가운 성에를 만들자. 가족을 생각하는 매캐한 계란밥이 되자.

    언제나 당연히 곁에 있을 것 같지만 언젠가 당연히 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실수를 하지 말자. 바라볼 수 있을 때 더 많이 바라봐 두자.

    강기명 (경남도교육청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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