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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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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어머니의 석양- 황채석(창원지법 마산지원 민사조정위원)

  • 기사입력 : 2018-12-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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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 필자에게도 자식밖에 모르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계신다. 남들은 92세의 우리 어머니를 보시고는 아직 카랑카랑한 목소리며, 꼿꼿한 허리로 노인 보행 보조기를 밀며 시골 농로를 1시간씩이나 걸으며 운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아직 정정하셔서 백 세까지는 장수하시겠다”는 덕담들을 해 주시곤 하지만, 자식인 필자가 보기엔 눈에 띄게 달라져 가는 어머니 모습이 늘 마음이 짠하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오후 4시 햇살처럼 자꾸 기울어져 가고 있고,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는 몸피로 세상에서 자리를 좁히고 매일매일 뒷걸음치며 옛날로 돌아가시는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현실 감각도 많이 잃어 가시고 금방 들었던 이야기도 잘 잊어버리곤 하신다. 대신 젊은 시절의 기억을 놀랄 만큼 명료하게 되살리며 우리가 어렸을 때 모습을 기억해 내시며 환희에 빠지기도 하신다.

    그런 어머니께서 얼마 전 마루에서 넘어지셔서 팔목이 골절돼 진주 모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잘 받으시고, 6주 정도 입원 후 퇴원하셨다. 퇴원하시는 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명한 노량대교를 구경시켜 드리려고 남해대교가 있는 하동 노량으로 차를 몰았다. 근처의 횟집에서 맛있는 회도 사드리고 산책을 하는데 마침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배경으로 서편 하늘에선 붉게 노을 지는 석양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었다. 노을 지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보니 그 석양이 우리 어머니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솟아오르는 찬란한 아침햇살도 아름답지만 서편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마지막까지 온화하고 평화롭게 노을 지는 석양도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어머니와 함께 본 아름다운 그 석양이 한참이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고향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 오후 늦은 시간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가는 나의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힘 없이 손을 들어주시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지금도 자꾸만 눈에 어려 가슴이 찡해 온다.

    황채석 (창원지법 마산지원 민사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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