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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우리나라 여행] 진해 소쿠리섬

낯선 안락함… 마음에 쉼을 주는 섬

  • 기사입력 : 2018-12-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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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을 소란한 폭우가 반긴다. 며칠간 기상예보를 확인하며 빌었는데, 결국 빗속의 캠핑이다. 비에 물들어 가는 풍경을 텐트 안에서 바라보는 건 매력적이지만 정리하고 해야 할 일이 배로 늘어나는 건 달갑지 않다. 혹시라도 배가 안 뜨는 최악의 상황은 없기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날. 장점보다 단점이 뚜렷한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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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소쿠리섬에서 바라본 솔라타워.

    ◆진해 명동 선착장= 밤새 내린 물기를 머금은 길을 달려 선발대와 합류했다. 미리 정리해둔 장비를 옮겨 싣고 진해 명동 선착장으로 출발한다. 부지런히 차창을 두드리던 손님은 뭍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지더니 바다가 어렴풋이 보이자 그친다. 좁은 골목을 돌자 보이는 공장과 그 너머 보이는 낡은 선착장, 작은 배 그리고 바다내음. 출발 여부를 확인하고 뱃삯과 탑승명부를 작성한다. 차에 실어둔 짐을 꺼내 뱃머리로 나르며 흔들리는 선착장을 계속 뛰어다닌다.

    정리가 끝나니 분주했던 뭍에서의 일은 끝이다. 살짝 어지러움도 가라앉힐 겸 출항 시간을 기다리며 선실에 앉는다. 늦은 오전임에도 낮은 산 지붕엔 새벽의 물안개가 남아있다. 바람을 타고 피어오른 비, 바다향이 퍼지자 배는 움직인다. 5분 정도의 짧은 항해를 위해.

    ◆소쿠리섬= 소쿠리섬에 도착하자 몇 안 되던 승객들 대부분이 내린다. 우리도 뱃머리를 가득 채운 짐들을 나른다. 인원보다 짐이 과하게 많다. 선발대는 이런 게 힘들구나. 선착장에 짐을 대충 쌓아두고 섬에 들어선다. 얕은 동산 하나와 넓은 모래사장. 그 위를 잔디인지 잡초인지 구분이 안 가는 풀이 넓게 덮여 있다. 주변으론 펼쳐진 텐트 몇 동과 간이 화장실, 간이 샤워대와 개수대. 야영장보다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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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 장비 설치= 다른 텐트들과 넉넉히 떨어진 곳. 풀밭 한가운데 바다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곳을 베이스캠프로 잡았다. 위치를 정했으니 본격적인 노동의 시작. 텐트 3개, 대형타프, 의자 7개, 식자재로 가득한 아이스박스를 옮긴다. 중심이 될 곳에 메인 타프를 설치하고 바다가 보이게 반달형으로 의자를 배치. 왼편에 아이스박스와 조리 장비까지 놓으니 그럴싸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캠핑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장소가 완성됐다.

    타프를 중심으로 좌우 뒤편에 6인용, 4인용, 2인용 텐트 총 3개의 텐트를 펼쳤다. 젖은 땅 위에 방수천을 깔고 텐트를 설치. 급작스러운 비에 대비해 주변을 크게 도는 배수로를 팠다. 땀 흘리며 전체 설치까지 약 1시간. 값진 노동에 대한 보상인지 비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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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사장.

    ◆섬이 주는 낯선 안락함= 하얗게 불태운 설치를 마치고 의자에 지친 몸을 누인다. 오후에 접어들었으나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선선한 바람. 간간이 들리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또 멍하니 앉았다.

    얕은 바다를 건너왔을 뿐인데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하다. 육지와 살짝 떨어진 작은 섬은 고립된 듯 평안하며 낯설게 안락하다.

    섬에서 맞이한 해방. 관계와 이해의 끈이 다 끊어져 스마트폰은 전축으로 퇴화해 고요한 음악만을 들려준다. 휴식을 끝내고 주변을 둘러보자. 넓게 펼쳐진 풀밭을 걷는다. 종아리 높이만큼 무성히 자라난 풀밭에 물기를 머금은 모래가 슬리퍼 사이로 드나든다. 잿빛의 하늘에 검은 바다까지 주변 색감이 칙칙한데 생기 있는 초록빛이 위안을 준다.

    모래사장 쪽으로 나가자 파도에 밀려온 나무에 쓰레기들이 무성하다. 그 옆에는 다 부서지고 부식된 콘크리트 덩어리가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선착장인가? 설렁설렁 걸어서 다시 텐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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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쿠리섬에서 바라본 풍경.

    ◆섬에서 만난 사슴= 짧은 산책을 마치고 뒤늦게 만족스러운 공복감이 밀려든다. 뭘 먹을까? 역시 캠핑은 라면이다. 코펠에 넉넉히 끓인 라면을 바닷바람에 식혀가며 먹는다. 편한 장소에서 아는 사람들과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끼자 행복하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각자가 잠에 음악에 책에 빠진 시간. 시간의 흐름도 모른 채 서로의 시간을 보내다 산 쪽에서 퍼진 소란에 고요가 깨진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 사슴이 나타났다. 산이라 부르기도 어색한 언덕 너머에서 4, 5마리 정도의 사슴이 풀밭으로 내려온다. 소쿠리섬 후기에서 사슴을 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진짜 나타났다. 사슴도 사람도 처음의 소란을 지나자 각자의 영역을 나누듯 침범하지 않고 영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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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트 친 모습.

    ◆섬의 저녁=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한 시간도 느리게 흘러 작은 배가 다시 들어온다. 후발대가 탄 배다. 비어있던 의자들이 각자의 주인을 찾아가고 회색의 하늘에 검정 잉크가 퍼져간다. 아직 빛이 남아있을 때 섬 뒤편을 보러 가자.

    쌍봉낙타의 등처럼 산 중턱 움푹 들어간 부분에 난 길을 오른다. 언덕을 넘은 반대편엔 자갈 해안이 넓게 나타났다. 모래와 풀이 무성해 텐트들이 있는 앞 해안과 달리 파도가 돌에 부딪치며 소리가 귀를 때린다. 곳곳에 보이는 쓰레기들과 작은 섬들을 담다 파도에 쫓기듯, 소리에 쫓기듯 다시 산을 넘는다. 느리게 걸어가다 보인 일행들의 뒷모습, 초록 풀밭, 푸른 해안, 바다가 묘한 정취를 준다. 다시 몇 장의 흔적을 담고 걷다 또 담는다.

    잠깐의 산책을 마치고 다들 타프 밑에 모인다. 본격적인 파티를 열자. 비빔면을 끓이고, 목살을 구우며 끝나지 않을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캠핑장과 달리 소쿠리섬에서는 모닥불을 피울 수 없다. 버너에 프라이팬으로 고기를 굽고 또 굽자 어둠이 밀려든다. 의자에 기댄 채 입만 분주히 떠들고 마신다. 따뜻한 등불 아래서 김동률의 노래를 두르고 각자의 이야기를 흘린다.

    그러다 문득 일어나 풀밭을 걷고 하늘을 본다. 잿빛으로 가득하던 구름이 밀려나 달이 스치듯 나무에 얼굴을 비친다. 달무리를 두르고 은은한 자태를 뽐내며 해안을 밝힌다.

    타프 너머로 들리는 웃음소리와 이야기에 달이 기울어 간다. 2시를 넘어 항아(姮娥)도 들어간 시간. 천을 지붕 삼아 바다를 보니 작은 빛들이 곳곳에 떠 있다. 서로 다른 명도의 어둠이 하늘, 산, 바다에 내려앉아 선명히 보이는 공장의 불빛이 곳곳을 밝히며 달과 세력을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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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녘 모습.

    ◆섬의 아침= 사찰의 타종처럼 규칙적이고 청명한 소리가 들린다. 몸을 일으켜 텐트를 나서자 주변 정리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간단히 씻고 와 의자에 앉는다. 몇 시간 전의 밤하늘과 달리 구름으로 빼곡하다. 일행들이 다 일어나자 남은 라면과 햄을 넣어서 아침을 한다.

    짭짤하게 배부르게 먹자 부는 바람에 졸음이 몰려온다. 가끔 부는 서늘한 바람에 옷을 당겨가며 짧은 낮잠을 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눈을 뜬다. 벌써 2시간이 지나있다. 새로운 배가 들어오고 분주히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보인다. 슬슬 나갈 준비를 하자. 먹고, 자고, 놀며 단조롭고 평안한 캠핑이 끝나간다. 텐트를 해체하고 짐 정리에 분리수거까지. 바다와 파도는 새로운 사람을 또 실어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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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훈
    △ 1991년 창원 출생
    △ 창원대 세무학과 졸업
    △ 산책·음악·사진을 좋아하는 취업 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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