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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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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언어의 품격과 위대함- 황채석(창원지법 마산지원 민사조정위원)

  • 기사입력 : 2018-12-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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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에서 조정을 하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들을 이야기하면서 설득력 있게 호소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론 비속어나 거친 말투로 상대를 비난하는 언어를 사용해 듣는 이로 하여금 당황하게 할 때가 있다.

    조정은 다툼이 있는 사건을 양측으로부터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상호 양보를 이끌어 내어 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조정안을 만들어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게 하는 법적인 제도인데, 여기서는 양측으로부터 말을 들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쓰는 말에는 분명 품격이 있다. 거기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지식, 성격과 살아온 삶의 궤적들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기 마련이다. 1960~70년대에 그리스 신화 피그말리온을 번안해서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my fair lady(꽃 파는 처녀)’는 하층민의 거친 말을 쓰는 거리의 꽃 파는 한 처녀가 언어 훈련을 통해 상류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언어학자로부터 말만 잘 배우면 화려한 무도회에 데뷔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처녀는 품위 있는 말을 배우기 위해 애쓰지만, 그게 추운 거리에서 꽃을 파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임을 알고 포기하려 한다. 그때 언어학자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언어의 품격과 위대함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이웃의 깊은 마음 속에 도달할 길이 없다”고 그 처녀를 설득한다.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잘못된 언어는 잘못된 문화를 낳을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무지가 얼마나 말의 깊이를 잃어버리게 했는지 반성 또 반성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겠다.

    가장 감동적인 언어는 가장 정확하고 정직한 언어라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깊은 사색과 독서의 흔적이 느껴지는 언어, 열정과 여유에서 나오는 상상력이 넘치는 언어는 듣는 이에게 진한 감동과 충분한 호감을 줄 수 있다. 삶의 아름다움이나 고통과 눈물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해 본 그런 깊이 있는 언어는 찾아볼 길이 없을까.

    황채석 (창원지법 마산지원 민사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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