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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마산문학의 향기와 지역정체성- 김인혁(시인)

  • 기사입력 : 2018-1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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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文才)와 인격은 일치하는가? 밤새 눈 부릅뜨고 먹이를 찾는 부엉이처럼 문인은 자신의 시대가 갖는 의미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지혜를 지녀야 한다. 이는 문필가로서든 일상의 시민으로서든 자신의 행위가 미래에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한 문인으로서의 자각이고 지성이다. 이런 자각과 지성을 보일 때 문학적 재능과 인격은 일치한다. 여기서 그의 문학적 권위는 바로 서게 된다.

    마산에 깊은 인연을 둔 문인은 일찍이 최치원을 시작으로 장지연, 이은상, 권환, 임화, 이원수, 김춘수, 천상병, 김수돈, 정진업, 김상옥, 이영도, 김남조 등 타 지역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여기엔 6·25 피란이나 결핵치료차 또는 학교 교사로 마산에 머물며 문명(文名)을 남긴 문인도 상당수 포함된다. 그만큼 마산지역은 오래전에 문학의 향기를 피워낸 고장이다. 하지만 향기를 잃고 있다.

    마산의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일굴 것인가. 이제는 그 문학적 업적과 권위를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첫째, 이들 중 친일행적이 너무 뚜렷하거나, 월북하여 문학을 정치투쟁의 도구로 삼은 이는 그 업적을 기리고자 해도 사회적 동의를 얻기 곤란하다.(장지연, 임화) 둘째, 계급주의 문학노선을 걸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잔학한 일제 수탈에 맞선 시대정신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면 그 문학적 업적은 기려야 한다.(권환) 단, 해방 후 북의 당 노선을 추종하여 문학을 정치도구화한 월북문인들과 행보를 일부 함께한 사실(조선문학가동맹 서기장)에 대해서는 이를 적시하여 후세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셋째, 친권력적 행위의 과보다 문학적 업적이 국민적 차원의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 공이 크다면 그의 문학적 권위는 살려내야 한다. 오늘날 역사적 비난을 받는 반민주 시대의 권력에 가까이 다가섰던 행보는 사실대로 적시하여 후세의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이은상, 김춘수)

    이러한 논지와는 상반된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지역사회가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지난번 글에서 말한 ‘비판적 합리주의의 가치(2018년 11월 2일 ‘작가칼럼’)’와 ‘문학적 생태계의 정의의 원칙(10월 5일 ‘작가칼럼’)’ 위에서 중지를 모아야 한다.

    전국에 개설된 문학관은 2010년 45개에서 최근까지 71개로 57.7%나 급증해왔다. 이는 문학자원이 자기 고장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얼마나 고양시킬 수 있는지, 시민들의 삶의 질에 대해 각 지역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세계도시경쟁력포럼에서 전 세계 800개 주요 도시의 경쟁력이 발표됐다. 창원은 지속적 경쟁력에서 서울(15위), 울산(83), 인천(102)에 밀리며 157위에 머물렀다. 문학자원은 지역이 가진 여러 자원 중 지속적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매우 중요한 핵심 자원이다. 문학자원은 지역정체성의 모태로서 기능하면서 시민의 DNA를 형성한다.

    현재 마산의 문학관 실태로서는 마산 시민의 문화적 DNA를 형성해 나가기가 어렵다. 지역정체성의 고양과 지속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위 마산문인들의 향기를 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통합적 문학단지 구축이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한다. 특히 노산에 대한 문학적 권위의 회복은 이러한 문학운동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마산은 ‘가고파’의 고장이고, 노산(이은상) 없는 ‘가고파’의 바다는 없기 때문이다.

    김인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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