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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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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중요무형문화재 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유영희씨

진주의 숨결 담아 전통춤의 맥 잇다
어릴 때부터 춤을 췄고 평생 춤으로 살았죠, 결혼 후 잠깐 빼고요
고 성계옥 선생 권유로 진주검무 입문해 2010년 예능보유자 됐어요

  • 기사입력 : 2018-1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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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을 춤으로 살아왔다. 잠시 춤을 떠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곧바로 돌아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이며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 유영희(71)씨. 그는 춤이란 자신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스럼 없이 답한다. 춤이란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은,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의 삶, 곧 나의 숨이라고.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춤을 추었고, 학업과 결혼으로 서울, 부산 등지의 타지 생활을 했지만, 결국 춤이 자신을 고향 진주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진주검무가 있고 진주만이 가지는 전통춤과의 만남을 생각할 때 결국은 운명이었다고 강한 어조로 표현한다. 칠순을 넘겼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인 것은 역시 평생을 춤과 함께 살아온 것이 배경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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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검무를 추고 있는 유영희씨.

    ◆진주검무 입문

    어린 시절부터 학업보다 춤을 좋아하던 유 이사장은 당시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서라벌예대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당시 지역에서 먹고살 만한 집이어서 가정학을 전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극렬한 반대에도 결국 그는 무용을 선택하는 데 성공했다. 대학 졸업 후 일본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이 꿈은 이루지 못하고 좌절을 맛봤다.

    부모의 성화와 당시의 사회적 기류에 따라 26세 되던 해에 결혼했고, 이후 육아와 남편 뒷바라지로 6~7년 동안 춤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한국무용의 춤사위가 떠오르며 이게 내가 지향하던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을 설득해 다시 서울로 올라가 활동을 재개했다. 명지대 평생교육원 무용단으로 미국, 캐나다 등 외국 공연도 다녔다.

    진주검무에 투신하게 된 것은 고 운창 성계옥 선생과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다. 윤 이사장은 그때 지인의 소개로 만난 운창 선생의 첫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고 회고한다. 선생의 진주교방춤에 대한 애정어린 이야기에 매료됐고, 서울에서 무용까지 전공했다면 이젠 진주인으로서 자신이 가진 재주로 지역을 위한 봉사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충고에 춤 인생의 항로가 재설정됐다는 것이다.

    당시 운창 선생은 무엇보다 지역의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데 이바지하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유씨는 1966년 운창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던 진주민속예술보존회에 입회하고, 본격적으로 진주검무에 입문했다.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진주검무와 진주교방문화에 대해 배우고 익히면서 활동하는 것을 스승이 눈여겨보면서 좀 특별하게 여겼던 것 같다고 한다. 유 이사장은 당시 운창 선생 휘하에 있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사실상 후계자로 선정된다.

    2006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전수교육조교로 인정받았고, 2010년 3월 운창 선생에 이어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아 현재까지 진주검무보존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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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에서 열린 검무 공연./유영희씨 제공/

    ◆유 이사장이 이끄는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사)진주민속예술보존회는 1974년 현재의 문화재청으로부터 인가받은 진주검무(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와 진주포구락무(경남무형문화재 제12호) 전승단체로, 조선 3대 제례의식 중의 하나며 교방예술의 분수령인 의암별제를 주관하고 있는 지역 대표적인 국악예술 사단법인체다. 그동안 교방춤 아박 고무 선악 등 전통무의 발굴과 복원에 힘써 오면서 종합예술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유 이사장은 앞으로 지역 고유 문화유산의 보전과 전승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시민들에게 보다 친숙히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보존회를 이끌면서 전통춤을 현대에 맞게 약간의 변형을 준 것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춤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만, 전통만 고집해서는 보존 자체가 어려워 시대와의 접목을 시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유 이사장은 설명한다. 지난 2008년부터 맡아온 보존회는 조직을 키우고 단단하게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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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유영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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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유영희씨.

    ◆전통예술을 하는 보람과 아쉬운 점

    유 이사장은 우리 음악에 몸을 실어 검무를 추고 있을 때면, 재색을 갖춘 산홍이가 된 듯 진주정신을 가득 담아 관중과 무언의 소통을 한다고 한다. 이때의 보람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진주검무는 무용의상인 전복의 자락을 잡고 노니는 자락사위라고 하는 춤사위가 독특해 연출 형식, 춤가락, 칼 쓰는 법 등 모든 기법이 과거 궁중에서 열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고 몰입도가 크다고 한다.

    최근 진주를 유네스코공예민속예술 창의도시를 만들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진주검무 동아리 발표회를 비롯한 각종 기획공연, 후견양성을 위한 대도시 지부 설치 등이 그것이다. 동아리 발표회에서 유치부, 초등부, 중학생부, 실버팀 등 시민들로 구성된 팀들이 한마음으로 진주검무를 추는 걸 보면서 자신의 약해지는 마음을 다시 추스른다.

    하지만 유 이사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전통춤의 깊이를 몰라주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특히 관계당국의 지원이 거의 없어 공부할 사람이 급격히 줄어드는 실정이다. 검무는 특성상 자신의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고, 돈벌이가 되지 않아 젊은 이수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결국 후계자 양성이 부족하고, 이것이 전통의 맥을 잇는 활동에 많은 제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전통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정말 지켜내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이 때문에 공연을 할 때 전통춤과 함께 다른 춤을 섞어 공연하는 등 변화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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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유영희씨.

    ◆전통예술에 대한 소견과 향후 숙제는

    “춤은 인간의 내외적 세계를 육체적 움직임을 통해 그 의미를 미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무용교육도 전인교육의 밑거름일 뿐 아니라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함양해 자유로운 신체운동을 통해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유 이사장은 “진주시민 모두가 진주검무를 출 수 있도록 애정을 갖고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사장은 우리나라 반만 년의 문화와 역사, 철학이 깃든 진주검무를 통해 시민들에게 가슴 떨리는 감동을 주어 소통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화랑 관창의 검무부터 궁중의 검기무, 진주교방의 악가무, 다산 정약용이 본 진주교방의 기녀들 검무, 현재 전승되고 있는 진주검무 등의 역사를 뮤지컬로 꾸며 전국 무대에 꼭 올리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다. 진주검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큰 바람의 하나다.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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