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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도시를 꿈꾸는 진주- 김미숙(경상대 민속무용학과)

  • 기사입력 : 2018-10-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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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시는 지난 10월 12일에 유네스코 공예·민속예술 창의도시 지정을 위해 제3회 국제학술토론회를 가졌다. 이미 이러한 창의도시 지정을 위한 노력은 2016년부터 시작하여 2018년 2월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로부터 유네스코 공예·민속예술부문 창의도시 예비회원으로 승인을 받았으며, 향후 2019년에 유네스코 창의도시로서 지정받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창의도시란 문화자산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려는 도시를 말하는 것으로 일반 도시들에 비해 창의적인 인재가 많고, 지역 문화자산을 이용한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도시를 의미하는 만큼 우리지역의 문화자산으로 국제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당연히 수행해야만 하는 일임이 틀림없다.

    그동안 세 차례의 국제학술토론회를 거치면서 진주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문화의 보고지인 동시에 또한 남명정신을 이어받아 선비의 고장으로 한국의 사상이 뿌리 깊게 배어 있는 도시이면서 역사의 도시임을 재확인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로 한국이 초토화돨 때 유일하게 끝까지 투항했던 곳으로, 당시 나라에 대한 애국 충절과 효사상이 실현되었던 곳임을 역사의 인물인 김시민, 곽재우, 정유경, 김준민 등이 진주대첩에서 승리로 이끌었다.

    2차 진주성 싸움에서도 서예원, 김천일, 최경회 장군이 끝까지 맞서서 싸웠던 도시였다. 마지막에는 왜군 장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의기 논개까지 한국의 ‘잔다크’였음을 통감케 한다. 그 시절 여자로서 전쟁에 나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만큼 진주 기녀들의 애국정신 또한 불기둥 쏟듯이 대단한 충절정신을 가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의 교토를 보라!! 교토지역 전체가 일본의 무형문화재이고 관광의 명소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다. 교토의 역사도 고대 아스카에서부터 중세인 에도시대와 함께 근세로 이어지며 수많은 아픔과 역사의 도시로 거듭난다.

    이때에 1688년경부터 생긴 예자(藝者, げいしゃ, 게이샤)들이 활약을 하다가 창기로서 사회를 문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교토로 가면 관광명소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눈을 채울 뿐 게이샤를 감히 만날 수도, 보기조차도 어렵다. 이들의 콘텐츠는 교토와 게이샤로 매혹적이지만 실제로 교토는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그들 게이샤들에게 논개와 같은 의기의 전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게이샤문화를 세계적인 상품화로 승격시켜 교토를 더 빛나게 한다.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는 고려의 유녀에서 시작되어 이들은 귀족자제로서 예기로 시작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예기집단과 창기집단으로 나눠졌던 것이 어느 날 잊혀지고만 싶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기방문화로 창기집단만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게이샤문화를 보면, 진주의 기방문화와는 비교할 만한 무형유산도 그들에게는 없다. 우리는 교방문화로서 빛나는 진주검무, 진주포구락무, 진주한량무 등이 수록된 ‘교방가요’라는 1685년에 지은 문헌도 있고, 이 종목들은 모두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이제는 여러 가무악의 기방문화가 장롱 속의 문화가 아닌 세계 속에 빛나는 문화유산으로서 창의도시에 또 하나의 문화적 요소가 되길 바란다. 세계화의 으뜸은 지역화의 고유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문화의 창조성이나 이를 기반으로 한 창의관광과 문화사업에 대한 세계적인 탈바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미숙 (경상대 민속무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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