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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칼럼] 네 생각은 뭐야?

  • 기사입력 : 2018-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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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이 높이 올라가고 구름 한 점 없이 쨍하게 맑은 10월. 퇴근 준비를 하며 칠판에 ‘운동장 주변 둘러보고 가을 찾아보기’라고 다음 날의 아침활동을 안내하고, ‘내 맘대로 공책’에 찾은 ‘가을’을 색연필로 나타내어 보라고 썼다.

    우리 학교는 주변 환경과 미세먼지, 이전 문제까지 더해져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학교 오른쪽에 있고, 학교 주변은 공장으로 둘러싸여 이리저리 봐도 도로, 도로뿐이고 마을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학교가 주변보다 살짝 높은 곳이라 안으로 들어서면 아늑하고 햇살도 잘 들어 학교 안과 밖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많은 소나무와 느티나무, 운동장 주변 벚나무, 은행나무, 대나무 등 큰 나무들이 감싸고 있어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다음 날 아침이 궁금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운동장을 휙 한 바퀴 둘러보고 교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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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고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이들!

    실내화를 신고 조회대 주변에 공책과 색연필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 반 아이들.

    “뭐 해?” “가을 찾아 그리고 있어요.”

    “운동장은 둘러 봤어?” “아니요. 여기서도 보여요.”

    “…….” “왜요?”

    어처구니없어 하는 내 얼굴을 보고 치우가 한마디 한다.

    “운동장을 둘러보는 건 뭘까?”

    “점심 때 하는 산책이요.”

    “그래 산책이지. 산책했어?”

    그제야 아이들은 왁자지껄 소리를 내며 운동장 주변으로 삼삼오오 걸어가기 시작한다.

    “하늘 그려도 돼요?” “나무만 그려도 돼요?” “낙엽 그려도 돼요?” “사람을 그려도 돼요?” “바람을 그려도 돼요?”

    “나현이는 뭘 그리고 싶어? 어디서 가을을 찾았어?” “바람요.”

    “그래. 그럼 바람을 나타내면 되겠네. 내가 찾은 가을을 어떻게 나타낼까 생각해 보렴.” “아! 알겠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꼭 색연필로 그려야 해요?”

    “아이고, 이 녀석들아!”

    도깨비 방망이처럼 답을 단박에 탁 얻어 내려는 아이들과 내가 이렇게 줄다리기를 하는 건 다반사이다. 생각해 보라고 하면 생각이 안 난다고 생떼를 쓰며 뭐든 정해서 알려 달란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에게 묻는다.

    “네 생각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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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희 (양산소토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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