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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28) 하동 매암차박물관

근현대사 아픔 닦고 전통 차문화를 덖다

  • 기사입력 : 2018-10-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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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도강산이 울긋불긋 단풍옷을 입는 이 계절에도 하동은 여전히 싱그럽다. 천년 세월을 지켜온 차나무들로 골짜기마다 빼곡하게 초록 물결이 일렁이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차 시배지인 하동은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섬진강의 깨끗한 물을 품은 지리적 특성상 차나무가 잘 자라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 덕에 1200년 전 신라 흥덕왕 때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차 씨앗들이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지리산에 기댄 마을과 사찰 곳곳에 다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하동지역에만 300개가 넘는 다원에서 차를 재배하고 덖는다. 초록빛이 형형한 차밭이 너른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하동 전통차농업은 지난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6호로 지정된 데 이어 유엔식량농업기구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공식 등재되며 생태·문화·환경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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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매암차박물관의 유물전시실. 1926년 일제강점기 임업시험장 관사로 쓰이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 가운데 역사를 잊지 않으려 전통 복원에 매진하는 다원이 있다.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악양면 정서리 매암차박물관이다.

    도무지 차밭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골목 앞에서 차량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마쳤다. 넓게 펼쳐진 차밭 입구를 생각하다 들어가는 길목을 놓친 후 겨우 하얀색 간판을 찾았다. 외길로 잇닿은 정원을 따라 들어가면 파릇파릇한 ‘비밀의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원은 5400평의 차밭과 유물전시실, 매암제다원, 매암다방 등으로 꾸며져 있다. 예사롭지 않은 외관을 자랑하는 유물전시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926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은 굴곡진 세월을 견뎠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산림국 임업연습림 부지에 지어진 적산가옥으로, 지리산 식생을 자원화하는 전진기지였지만 사실상 수탈이 목적이었다. 임업시험장 관사로 쓰이던 건물은 1945년 미군정에서 관리하다 1948년 정부로 귀속됐다. 1950년 6·25전쟁 때는 잠시 인민군 자산으로 있다가 수복 후 대한민국 정부 소유가 됐다. 그야말로 근현대사의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공간은 1961년 비로소 개인 소유인 매암다원으로 자유를 갖게 됐다.

    신발을 벗고 전시실에 발을 내디뎠다. 일본식 가옥 특유의 마루와 복도, 창문, 다다미 원형이 잘 유지돼 있었다. 가옥 내부에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 430여 점 가운데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삼국시대 손잡이 달린 토기잔부터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화형탁잔, 조선시대 질화로, 떡살 다식판 등 시대별 찻잔과 다기, 유물을 찬찬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상마루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으니 문 사이로 보이는 차밭이 한 폭의 수채화가 돼 카메라 렌즈에 담긴다.

    매암다방 입구에 적혀 있는 이용법이 재미있다. ‘스스로 체계’라고 적혀 있는데, 준비된 다기로 차를 만들어 마신 뒤 씻어두고 3000원을 통에 내고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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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암차박물관의 매암다방.



    이곳은 일본인들의 농막이었던 곳을 수리해 별채로 쓰다 강동오(53) 관장이 운영을 맡으면서 지금의 다방으로 정비했다. 원형은 살리면서 안전하도록 괴고 덧대느라 고생을 꽤 했다고 했다. 문을 닫는 초등학교의 마룻바닥을 가져와 바닥에 깔고 티테이블을 만들었으니 어느 곳 하나 허투루 볼 공간이 없다.

    다방에 들어서자 강 관장이 차를 만들다 왔다며 인사를 건넸다. 예년 같으면 4~6월 차를 수확해 만드는데 올해는 여름이 너무 더웠던 탓에 가을까지 작업이 이어진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차부터 권했다. 최근 TV 프로그램인 ‘수요미식회’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잭살’차였다. 작설차의 하동 고유어로 참새 ‘작’(雀)에 혀 ‘설’(舌), 말 그대로 참새 혓바닥처럼 작고 어린 찻잎을 뜻한다. 조선홍차의 원형으로, 옛 선조들이 곡우와 입하 사이에 딴 고급 찻잎을 발효해 중국 보이차처럼 차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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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암다방 차



    강 관장의 부인이자 국립목포대에서 차문화 강의를 하는 장효은 박사는 하동군의 홍차 역사를 발굴해 한국 다사(茶史)를 정리하고 있다. 장 박사는 하동군 악양면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 발효차의 생산방식과 소비형태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조선홍차를 복원해냈다.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어릴 때 먹던 차맛이랑 똑같다는 평을 받았단다.

    차문화의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때 소멸됐는데, 조선홍차도 그중 하나였다.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홍차 대신 엄격한 격식의 일본 다도가 차문화로 한반도에 전파됐다. 잭살차의 효능과 전통에 대해 묻자 장 박사는 대답 대신 현지조사 때 들은 악양지역 할머니들의 말을 전했다. “어디가 아프다면 그걸 먹어야 돼. 배 아파도 그걸 먹고 머리 아파도 그걸 먹고 감기가 들어도 그걸 먹고. 우리 젊었을 땐 동네 할매들이 주전자를 화로 위에 놓고 잭살을 넣어 자글자글 끓여 먹었어. 그걸 뚝배기나 사기그릇에 담아 마시는 거야. 그 잭살이 그렇게 향이 좋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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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암다방 내부



    차는 채엽, 생엽 선별, 덖음, 유념(비비기), 털기, 건조, 선별, 가양, 포장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매암차는 그간 가꿔온 다원에서 정성스레 찻잎을 따 고유의 전통 수제 덖음 방식으로 차를 만든다. 고르기를 마친 찻잎은 참나무 장작불에 달군 백동솥에서 덖어 멍석 위에서 일일이 손으로 비비는데 이를 유념이라 한다. 비벼진 찻잎은 전통 온돌 방식으로 재현된 황토방에서 수분을 제거시키기 위한 건조에 들어간다. 이 과정을 마치면 마지막 가양 처리를 하는데 백탄 숯불에 달군 솥에서 보이지 않는 수분을 마지막으로 제거시켜 차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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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암제다원



    강 관장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차농사를 짓고, 한 다원에서 나온 차만 쓴다는 명차의 조건을 지킨다고 했다. 찻잔 속에서 불그스레 피어나는 차를 마시며 차문화박물관을 만들게 된 배경을 물었다. 강 관장은 웃으며 “상업 목적으로 차농사를 지은 건 3대째지만 늘 차를 마시는 게 일상인 동네에서 태어났으니 차문화에 관심이 있는 건 당연지사”라고 답했다. 그는 “그간의 노력을 차문화를 아끼는 대중과 함께하고 동시에 새로운 목표를 모색하고자 2000년에 차문화박물관을 개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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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보이지 않는 수탈과 폭력적 공간이었던 아픔 깃든 다원이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평온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체험과 교육을 바탕으로 올바른 차문화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나눔이 있는 사회참여형 박물관을 지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 관장은 차 명맥을 잇고 차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차 만들기, 떡차 만들기, 채엽 체험, 차 블렌딩, 청소년 초록 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원 예술 순례와 콘서트, 다원그림전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도 기획해 열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심신이 지쳤다면 평온한 곳에서 차 한잔 마시는 여유를 찾아보자. 차를 덖듯 마음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볼에 와 닿는 선선한 바람, 눈이 시원해지는 초록 들판은 덤이다.

    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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