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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민간인학살사건 등’에서 ‘등’은 지워져야 한다- 김재수 (영화감독)

  • 기사입력 : 2018-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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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양민학살사건(등)은 국군의 작전명 ‘견벽청야(堅壁淸野)’로 희생된 민간인 학살사건을 일컬음이다. 1951년 2월 초, 국군은 공비 토벌과 통비분자 색출을 명분으로 무자비하게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2월 5일 거창군 신원면에 먼저 진입한 국군은 별 성과가 없자 2월 7일 지리산 부근의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휴천면, 유림면 일대에서 396명(유족회 705명)의 무고한 양민을 집단학살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군은 다시 거창군 신원면에 진입하여 719명(어린이 359명 포함)의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거창지역 국회의원이었던 신중목 의원에 의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이승만 정권은 ‘거창사건’에 관해 직접 담화문을 발표했다. 요지는 ‘통비분자 187명을 군법회의에 넘겨 처형한 사건’으로 호도했다. 당시 영국의 한 언론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라고 쓰기도 했다. 대내외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이승만 정권은 책임을 시인하고 관련 군인들을 사법조치했지만 형식에 그쳤다.

    강압에 의해 침묵하던 유족들은 4·19 이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것도 잠깐, 5·16 군사정부에 의해 반혁명분자로 몰려 오히려 모진 고초를 겪으며 통한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고 김대중 정부에서 거창과 산청에 추모공원이 건립되어 매년 따로 위령제 및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배상문제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나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정국 속에 대통령 직무대행 고건은 6·25전쟁 당시 국군의 민간인학살사건이 전국적 상황이고, 여타 지역에서도 배·보상 문제가 불거지고 정부의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결국 폐기되고 만다.

    거창민간인학살사건 유족회는 정부의 2004년 특별법 거부권 행사가 함양·산청사건을 연관시켰기 때문이라며 거창사건만 배상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된다고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함양·산청유족회는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1996년)에 함양·산청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두 민간인 학살사건은 동일 사건임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 같은 작전으로 학살사건이 발생하였기에 두 유족회는 이제 반목과 갈등을 접고 대승적으로 단일법안 제정에 힘을 모을 때다. 지금이 그 기회다. 2021년이면 ‘거창사건 등’이 발생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문재인 정부와 다수의 진보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그 기회임에 분명하다. 경상남도도 두 유족회의 뜻을 존중할 것이다. 그리하여 빈들의 슬픈 청야(淸野)가 아니라, 함께하는 광장의 청야에서 진정한 명예회복과 배·보상 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다.

    김재수 (영화감독)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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