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촉석루] 할머니와 인터넷 그리고 별빛- 고영문(창원문화재단 경영지원본부장)

  • 기사입력 : 2018-10-05 07:00:00
  •   
  • 메인이미지

    지난 9월 12일 이른 밤 창원문화재단 창립 1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별빛이 내린다’라는 타이틀의 국악공연을 했다. 인지도 높은 유명 국악인을 초청하고 창원을 대표하는 전통 고택인 창원의 집 마당에 무대를 설치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별빛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초가을 밤, 고택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는 매우 높았다. 300석 규모의 좌석을 마련해 인터넷으로 관람 희망자를 접수한 지 불과 3일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됐다.

    어둠이 짙어갈 무렵 공연 준비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창원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 모르는 우리는 공연을 볼 수 없느냐?”, “나이 많은 사람을 땅바닥에 앉혀놓고 기다리게 하느냐?”는 격한 항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에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창원의 집 담벼락에 줄지어 앉아계시는 할머니들이 족히 200여명은 돼 보였다. ‘접수하지 않은 할머니들이 초저녁 마실 하듯 오셔서 저렇게 앉아 기다리신다’는 직원의 설명에 대비책을 물었다. 예비로 100석을 준비해놓았지만 태부족이란다. 참으로 난감했다.

    고민 끝에 인터넷 접수자들이 채 입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머니들을 모셨다. 먼저 자리 잡고 앉아있던 젊은이들이 하나둘 일어선다. 누가 시키지도 권유하지도 않았다. 뒤에 온 젊은이들 또한 상황을 읽었는지 아무 불평이 없다. 적정 인원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모였어도 출연자들과 함께 쏟아지는 별빛을 마음껏 받으며 흥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연이 막바지로 접어들 때쯤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랫가락과 관람객들의 흥, 그리고 별빛과 인간의 배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 연출되고 있었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어르신들 죄송합니다. 다시는 담벼락 밑에 앉아 기다리시게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공연의 내용과 규모 등을 세심히 살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중심의 공연’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좌석을 확보했지만, 어르신들을 먼저 챙긴 젊은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고영문 (창원문화재단 경영지원본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