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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결국은 사람이다- 이종훈(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8-10-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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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추석연휴 때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가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 함께 올라 손을 맞잡고 번쩍 들어올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TV 화면에 비춰진 평양의 변화된 모습과 함께 건물에 쓰여진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는 표어가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왜일까. 북측에서 실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 특히 경남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방북단에 참여한 이재용 삼성 부회장도 당시 리룡남 북한 내각 부총리와의 경제인 방북단 면담에서 “평양의 건물에 쓰여진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는 표어가 삼성의 기본경영철학인 ‘기술중심 인재중심’과 유사하다”고 밝혀 화제가 됐었다.

    ‘인재’라는 것은 꼭 과학기술 분야에만 국한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온몸으로 체득한 이른바 ‘고수’들이 모두 인재인 것이다. 고수들을 제대로 모시지 않는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에서 배울 수 있다.

    16세기 프랑스에는 ‘위그노’라는 칼뱅파 신도들이 섬유방직 기술 등 첨단기술로 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위그노들을 가톨릭이 아닌 칼뱅파 신교도라는 이유로 탄압했고, 40만명의 위그노들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미국 등지로 탈출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산업 기반은 붕괴됐고, 이들을 받아 들인 국가는 기술발전을 이뤘다. 이런 사례를 보면 위그노들이 오늘날 선진국들의 산업기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인재 중시는 동서고금의 진리이겠지만 현재와 같은 기술경쟁 시대에선 더욱더 그러하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2014년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가 발표한 한국의 인재유출률은 조사대상 60개국 중 46위로 필리핀이나 중국보다 더 높았다. 미국에서 공부한 이공계 고급인력 1400명 가운데 60%가량이 미국에 남는 것을 희망한다고 한다. 또 국내 석·박사 인력도 73%가 해외로 나가길 원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는 힘들게 공부하고 자격을 갖춰도 대기업과 공공기관 같은 질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고 과중한 근무, 경직된 조직문화 등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더욱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고수’들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고, 제조업과 조선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경남도 조선업 불황 등의 여파로 관련기술을 축적한 숙련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모든 산업의 핵심은 사람인데,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창하며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김경수 도지사가 최근 도청 간부들에게 ‘축적의 길’이라는 책을 추천하며 읽어보길 권했다고 한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지은 것으로 그는 이 책에서 ‘축적된 도전의 경험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며 ‘기업과 산업사회 전반에 고수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경남도청에서는 노사정이 함께 모여 성동조선해양의 고용안정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인적 구조조정 없이 고용이 보장되는 새로운 노사정 상생 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협약까지는 숙련된 고수들을 지키려는 김 지사의 중재 노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열쇠는 결국 사람이다.

    이종훈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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